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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성군 농협구례교육원 부원장
구례 섬진강변에도 한가위가 다가왔다. 연어가 자신의 고향을 되찾아가듯 추석이 가까워지자 섬진강 사람들도 손님맞이 준비에 분주하다. 하지만 올해는 추석 연휴기간 해외로 떠나는 여행객 숫자가 다른 때보다 크게 늘었다고 한다. 차례 대신 여행으로 추석 연휴를 보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해외여행 일정이 몸과 마음을 충전할 만큼 느긋한 스케줄은 아니다. 대부분 주어진 일정 속에서 더 많은 장소를 더 빨리 관광을 하기 위해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다반사다.

 물론 ‘빠름’은 오늘날 현대문명 코드 중의 하나다. 그러나 우리 국민의 ‘빠름증후군’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심하다. 일을 빨리 처리하면 왠지 능력 있게 보이고, 빠른 시간 내에 문제를 빨리 푸는 애들은 왠지 똑똑하게 보인다. 이런 사회적 시선 때문에 사람들은 빠름을 추구한다. 심지어는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 음식이 조금만 늦게 나오면, 누군가 일어나 항의한다. 도로에서 차를 몰다 보면, 항상 분초를 다퉈가며 정지신호를 무시하는 일도 목격된다. 그러다 보니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행복이란 단어가 왠지 낯설기만하다. 경쟁사회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일분의 시간을 아껴야 하고, 그 저축된 시간을 또 바쁜 시간 속에서 쪼개 써야 한다. 하지만 속도를 숭배할수록 사람들은 소외돼 가고 있다. 신속함으로 인해 생활이 편리해졌으면 전보다 마음이 풍요로워져야 하는데 답답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더 늘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세상의 빠른 속도가 인간의 풍요로운 마음을 빼앗아 갔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큰 이유 없이 숨 가쁘게 앞만 보고 달려간다. 과연 빠른 게 경쟁력일까, 빨리빨리도 좋지만 그 밑에 ‘정확’이라는 행동의식이 있어야만 그만큼이나 경제적 효과를 낼 수 있다.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경쟁력과 행복의 시간을 보장하는 것만은 아니다. 앞으로는 무조건 빠른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이제는 시간보다는 방향의 설정이 우선되고, 그 시간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의 미학’을 점검해 봐야 할 때다.

 자연에는 일정한 리듬이 있다. 밤과 낮의 리듬이 있고, 사시사철의 리듬이 있다. 자연의 리듬은 결코 빠른 것이 아니다. 자연의 리듬은 빠르지 않지만,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다. 인간의 생체 리듬은 자연의 리듬이다. 자연의 리듬에서 멀어질 때 결코 건강할 수 없다. 틈나는 대로 농·산촌을 한가로이 거니는 것은 시간을 중단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게 쫓겨 몰리는 법 없이 오히려 시간과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게 된다.

 농산촌의 소리를 들어보자. 스치는 바람결소리,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개울물소리, 새가 노래하는 소리, 풀벌레 소리. 이런 소리는 우리의 감각을 지배하고 있다. 자연의 소리는 확실히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불안에서 해방시키며, 또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는 힘이 있다. 누구나 소리를 통해 감동을 받게 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연히 듣게 된 소리가 추억을 상기시키는 일도 있으며, 마음이 울적할 때 구슬픈 풀벌레 소리를 듣고 막걸리 한잔 기울이고 나면 왠지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저절로 움직이게 하는 힘은 자연의 소리에 있다. 따라서 자연의 소리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생활의 원동력이 된다.

 올해는 지역마다 가을꽃축제가 유난히 많다. 추석연휴 기간에 열리는 만큼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성큼 다가온 가을의 정취를 만끽해보자. 그리고 농·산촌 자연의 소리를 많이 들어보자. 그늘진 나무 아래 덥석 누워 있다 보면 바람 지나가는 소리가 사람들 지나가는 소리만큼이나 선명하게 들린다. 머리 위로 보이는 푸른 나무 가지에는 새파란 나뭇잎 소리가 세속에 찌든 귀를 맑게 씻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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