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의 명절 음식 중에는 배추전이 있다. 어릴 적부터 결혼 후 분가 전까지 어머니의 배추전은 필자와 가족의 ‘소울 푸드’였다.

 배추전은 제사는 물론 집안 행사에서부터 즉석 간식에 이르기까지 그 쓰임새가 다양했다. 비 오는 날이면 어머니는 빈대떡이나 파전 대신 배추전을 꼭 해 주셨다. 배추의 단 맛과 얇은 밀가루의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돌아가신 할머니도 생전에 배추전에 막걸리 한 사발을 곁들인 그 맛을 참으로 즐기셨다. 그러니 일찍 시집와서 아흔 여섯까지 시어머니를 모신 어머니의 배추전 솜씨는 달인 그 이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혼과 동시에 필자에게 배추전은 추석과 설, 1년에 딱 두 번만 맛 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 됐다.

 이번 명절 참에는 배추전을 마스터하겠다는 각오로 필자는 어머니 옆에 바싹 붙어 앉아 손 동작 하나 놓치지 않고 기억했다. 그 결과 수십 년을 어머니 곁에서 시중을 들어가며 배추전을 만들고 먹었지만 ‘직접 재연’할 의지는 없었음을 알게 됐다. 어머니의 배추전은 요란하지도 현란한 손놀림도 기억할 만한 비법도 특수 재료도 포함돼 있지 않았다. 조리법도 맛도 솔직 담백했다. 어머니는 그저 찬물에 씻은 배추를 준비하고 밀가루에 물과 굵은 소금을 부어 묽게 반죽한 뒤 식용유를 프라이팬에 두르고 조리할 뿐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어머니는 배추 세 잎의 가장자리를 일정하게 겹쳐 먼저 배추부터 살짝 익혔으며 그 후에 국자와 숫가락을 이용해 연결 부위부터 밀가루 반죽을 입히셨다. 배추 줄기 부분은 얇디 얇게 반죽을 얹어 배추 고유의 맛을 살리셨다.

 역사의 기록도 마찬가지다. 후대에 재연할 의지를 갖고 바로 옆에서 세심하게 보고 듣고 기록하고 자료들을 잘 정리해 둔 자만이 실체적 진실을 재연할 수 있는 법이다. 겉만 비슷한 시늉과 흉내에는 알맹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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