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훈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jpg
▲ 박제훈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
모처럼 열흘이 넘는 긴 연휴를 보내는 마음이 한편으로는 한가위 보름달처럼 풍성하고 편하기도 했지만 마음 한구석으로는 못내 찜찜한 것이 있었다. 생각해 보니 우리를 둘러싼 대내외적 환경과 여건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우선 외국에서 심지어 평창 동계올림픽에 자국 선수단을 보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한반도의 안보 위기가 심각하다. 특히 우려되는 것이 북핵 위기의 당사자라 할 수 있는 미국과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어느 때보다 예측이 어려운 인물이라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돈키호테식 언동은 이미 잘 알려져 있고, 김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이나 아버지 김정일보다 훨씬 호전적이고 독선적이라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한반도에서의 핵전쟁 발발 시 북한 정권의 붕괴는 물론 북한이라는 국가의 지도상에서의 소멸을 이미 트럼프가 위협했듯이 김정은이 바보나 미치광이가 아니라면 먼저 전쟁을 일으키지는 못할 것이다.

 오히려 평소 백인우월주의와 미국우선주의를 표방해온 트럼프가 미국 본토가 핵미사일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핑계로 한반도에서의 선제공격을 취할 가능성이 우려된다. 트럼프로서는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발이 중국의 부상을 결정적으로 견제하면서 국내에서 탄핵까지 몰리는 자신의 입지를 만회할 수 있는 회심의 뒤집기 한 수가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북핵 위기와 신고립주의는 연결고리가 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Brexit)와 트럼프 당선으로 힘을 얻은 보호무역주의와 자국우선주의는 글로벌 자유무역으로 전후 고도성장을 구가하며 선진국 문턱까지 발전한 우리나라로서는 극복해야 할 엄청난 위기와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동북아에서는 당장 미국과 중국의 이해가 곳곳에서 부딪히고 이러한 미·중 간의 갈등이 북핵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고도화하는 단계까지 이른 근본 배경의 하나는 국제사회의 계속된 제재에도 불구하고 견지해온 중국의 미온적 태도였으며 그 근저에는 결국 미·중 간 동북아에서의 패권경쟁이라는 글로벌 질서의 구조 재편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미·중이 힘을 합쳐 동북아를 비롯해 글로벌 질서를 새롭게 구축하는데 합의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신고립주의를 뛰어 넘어 새로운 글로벌 자유무역체제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북핵 문제는 근본적 해결이 어려울 것이다.

 현 문재인 정부는 대화를 강조하고 대통령 외교안보 특보인 문정인 교수는 지금이라도 북한과의 대화를 해서 북핵 폐기의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정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 개발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이를 중단하고 대화에 나설 인센티브는 결코 없을 것이다. 북핵 위기의 본질은 이미 바뀌었다. 얼마 전까지 타당했던 대화와 제재의 병행 전략은 폐기해야 한다.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의 충실한 이행과 이에 대한 미·중 간의 전략적 합의가 긴요하며 제재가 안 먹힐 경우 최악의 사태, 즉 전쟁 발발 가능성을 카드로 중국의 적극적 참여를 압박해야 한다. 중국으로 하여금 고강도 제재와 전쟁 발발 사이에서 선택을 하도록 강요해야 한다.

 이러한 어려운 외교안보 상황이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지난번 문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핵 위기의 다자적 해결을 강조했다. 특히 동북아안보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국내 언론에서는 큰 반향을 얻지는 못했지만 우리가 나아갈 방향은 미, 중, 일, 러를 비롯한 북핵 위기의 당사국들이 모여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를 우리가 나서서 만들어야 한다. 기존의 6자회담과 달리 북한의 참여를 전제로 할 필요가 없다. 우선은 북핵 제재의 효과적 실행과 점검 및 북한의 연착륙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 우리가 북핵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강조하는 ‘한반도 운전자론’이 아니라 주변국의 협력과 동의를 구하고 우리는 심부름을 한다는 겸손하고 신중한 처신에 방점을 찍는 ‘동북아협력 간사론’을 주장해야 한다.

 이 어려운 와중에 우리에게 위기이자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 제4차 산업혁명이다. IT와 바이오에 나름의 비교우위가 있는 우리가 주도해서 한·중·일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 4차 산업혁명 협의체’를 결성한다면 갈등 해결에 초점이 맞춰진 동북아안보협의체를 보완해 상호 윈윈할 수 있는 지점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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