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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재호 경기연구원 박사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70세에 「문명속의 불만(Das Unbehagen in der Kultur)」을 집필했다. 이 책의 요지는 인류가 본능과 욕망을 억제함으로써 문명을 얻었다는 것이다. 즉 공격적인 욕망이 행동으로 표출되면 더 강한 사람이나 공동체로부터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 양심의 가책은 여기에서 비롯한다. 흔히 말하는 죄의식은 사랑의 상실에 대한 명백한 불안인 셈이다. 어린 시절 부모의 바람에 어긋나지 않도록 행동하다가 성인이 되면 공동체가 부모의 역할을 대신한다. 이와 같이 인간은 불만족스럽지만 자신의 공격성을 억제한 대가로 부모와 공동체로부터 인정을 받고, 궁극적으로는 폭력이 난무하는 야만에서 벗어나 질서와 안정을 누린다는 것이 프로이트의 주장이다.

 최근 청소년 폭력이 공격성의 극단을 드러내고 있다. 잔인함의 정도도 문제지만 피해자의 모습을 인터넷에 버젓이 공개하는 것을 보면 죄책감도 없어 보인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청소년 폭력을 우려해 처벌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소년법 개정도 고려한다고 하니 청소년 폭력을 응징하려는 우리 사회의 결연한 의지도 느껴진다.

 이 와중에 돌아봐야 할 것이 있다. 청소년 폭력이 갈수록 흉포(凶暴)해지는 근본 원인이다. 2016년 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미성년범죄 7만6천여 건 중 우발적으로 저지른 행동이 1만9천여 건으로 25%를 차지한다. 청소년학교폭력예방재단의 2016 전국 학교 폭력 실태조사에서는 폭력을 행한 이유 중 ‘장난으로’가 36%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많고 많은 장난 중에 왜 하필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장난인가? 가정과 학교 어디에서도 폭력을 가르치지 않았는데 청소년의 폭력이 증가한다면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모든 사람에게는 공격성이 잠재해 있으며, 청소년은 욕구를 무분별하게 드러내는 과도기적 발달 단계에 있다. 우리 사회는 산업화와 함께 짧은 기간에 핵가족화가 진행됐고, 맞벌이 가정이 크게 늘면서 돌봄의 공백이 커졌다. 아이들을 돌보는데 소홀한 부모들은 저마다 사정이 있겠지만 아이들은 그런 사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칭찬을 하든, 꾸짖든 아이들은 자신의 존재와 행동 하나하나를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길 기다린다. 학교와 사회에서 학생들을 철저히 감시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청소년 폭력의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

 2016년 기준으로 청소년 범죄의 재범률은 43%에 이른다는 사실은 단지 처벌만으로 청소년을 교화시키는 데 한계가 있으며, 일벌백계(一罰百戒)의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을 시사한다. 물론 청소년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청소년이 잘못을 저지르면 뉘우치도록 엄하게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 시대의 부모들은 무엇보다 가정에서 자녀와의 깊은 유대(紐帶)를 이루는데 실패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어른들의 무관심과 방치를 돌아보지 않고 아이들의 책임을 묻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외면하는 것이다. 먹고 살기 바쁘니 우리의 자녀들이 알아서 잘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만은 모든 부모가 같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땅에 건강한 씨를 뿌려도 제때 빛과 물을 주지 않으면 열매를 거두지 못한다. 자식도 자라나면서 각 시기에 알맞게 돌보는 정성이 있어야 비로소 건전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다. 청소년 문제는 며칠 방심한 사이에 운이 나빠 생겨난 것이 아니다. 10년에 걸쳐 누적된 사람의 문제를 법이나 제도를 바꿔 급하게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자식농사에 왕도(王道)는 없다. 부모의 역할은 학교와 사회에서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청소년들은 부모의 관심과 보살핌을 받을 권리가 있다.

 청소년이 공격성을 주저 없이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이리저리 발동하는 욕구를 애써 다스려도 부모와 사회로부터 기대와 사랑을 받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청소년의 거친 일탈을 선과 악으로 판단하기 전에, 사랑받기를 단념한 아이들의 무의식적 반응임을 직시해야 한다. 가정의 일상생활에서 부모와 자녀가 건강한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너무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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