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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승연 인하대 교수
소득주도성장을 대표 성장 담론으로 내세웠던 문재인 정부가 궤도를 수정하고 나섰다. 혁신성장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 궤도 수정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문재인 정부가 가계소득이 늘어나면 소비와 투자가 늘어 경제성장이 실현된다는 소득주도성장의 한계를 직시했다는 점이다. 즉 그동안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했듯이, 소득주도성장은 경제의 수요 측면에서의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인 것이지 장기에 걸친 성장 담론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하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있어서 우리나라가 뒤처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인식한 것이다. 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 첫 회의를 직접 주재하면서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공정경쟁을 통한 혁신친화적 창업국가’를 제시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4차 산업혁명으로 상징되는 혁신성장이 성공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단순히 정부가 나서 선언하고 위원회를 만든다고 혁신성장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또한 기존의 방식대로 민간 관련 규제를 푼다고 혁신이 저절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민간과 정부로 대표되는 경제주체들이 기술혁신의 본질을 꿰뚫고 이를 통해서 국내에서 4차 산업혁명을 본격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술혁신은 기존에 없던 전혀 새로운 기술이 발명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기존 기술에 바탕을 둔 성능의 향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전자를 급진적 혁신(radical innovation)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점진적 혁신(incremental innovation)이라고 부른다. 1948년 미국 벨(Bell)연구소에서 최초로 반도체의 기초가 되는 트랜지스터 기술이 발견된 것이 급진적 혁신이었다면, 이후 삼성전자가 반도체 메모리분야의 강자로 떠올라 정확히 4배씩 집적기술을 향상시켜 온 것이 점진적 혁신이었다.

 시장경제에서와 마찬가지로 기술혁신을 연구하는 분야에서도 공급과 수요 중 어느 쪽이 중요하느냐는 오래된 논쟁이 이어져 왔다. 급진적 혁신이 연구개발 및 과학의 발달 등 공급 측면에서의 기여로 가능하다고 한다면, 점진적 혁신은 상대적으로 성능 향상에 대한 수요 측면에서의 요구가 강해서 이뤄진다.

 대개 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큰 기술 패러다임의 등장은 급진적 혁신에 기인하는 바가 크며, 그 이후의 다양한 상품화와 개량은 점진적 혁신에 의존한다. 1784년 영국에서 시작된 증기기관과 기계화로 대표되는 1차 산업혁명, 1870년 전기를 이용한 대량생산이 본격화된 2차 산업혁명, 1969년 인터넷이 이끈 컴퓨터 정보화 및 자동화 생산 시스템이 주도한 3차 산업혁명 모두 초기에는 급진적 혁신이 나타났고 이후 점진적 혁신이 뒤따랐다.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민관이 협력해 이들 분야의 과학기술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4차 산업혁명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키워드는 융합이다. 즉 신기술 사이의 융합은 물론이고 이러한 기술들이 기존 산업기술들과 융합돼 혁신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을 감안한다면 기존 제조업의 재구축에 대한 지원 또한 절실하다.

 현 정부에 대해서는 답보상태에 머물러있는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을 확충하기 위해서 혁신성장에 전력할 것을 주문하고 싶다. 4차 산업혁명이 과학의 발달과 기술혁신과 같은 공급 측면에서 주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 과학기술 인력양성 및 제도개선 등의 풍토 조성에 주력해야 한다.

 또한 혁신성장의 영역에 소득주도니 공정경제니 하는 영역을 섞어서 정책을 펴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서민 중심으로 개인소득을 늘려 소비를 늘린다든가, 공정한 경쟁을 지향한다는 것은 그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그것들은 그것들대로 복지 확대나 시장질서 확립 차원에서 접근해야지 혁신성장과 섞어서 추진해서는 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혁신성장의 주체는 민간이 돼야 하고 정부는 이를 위한 풍토 조성에만 전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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