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는 내년 경기 정명(定名·1018년, 고려 현종) 1천 년을 앞두고 있다. 지난 1천 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1천 년을 준비해야 하는 변곡점이다. 이 시기에 유심히 들여다봐야 할 요소가 하나 있다. 바로 동력(動力)이다. 시대에 따라 동력의 주체는 달라 질 수 있다. 하지만 근현대사를 거쳐온 대한민국의 동력은 청년(靑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연령대를 지칭하는 청년일 수도 있지만 이를 넘어선 가치를 대변하기도 한다. 경기도에는 때 마침 도청 소재지가 위치한 수원에 천년의 동력을 가늠할 수 있는 청년 공간들이 자리잡고 있다. 옛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부지(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소재)에 위치한 경기상상캠퍼스가 그것이다. 이곳은 2016년 6월 생활문화와 청년문화가 혼합된 복합문화공간으로 문을 열었다. 경기상상캠퍼스에는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청년들이 상주하고 있다. 이들의 작업은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는 것(想像)을 현실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生生)으로 만드는 공통분모가 있다. 어떤 형체가 있는 물건일수도 있다. 사회적 관계를 위한 프로그램일수도 있다.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콘텐츠 이기도 하다. 경기문화재단의 지원 속에 본보는 경기상상캠퍼스의 청년들을 만나 ‘상상생생(想像生生)’ 하는 모습을 다루면 경기천년의 동력을 논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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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주 作 푸른 시간(상캠)을 기억하는 다섯 가지 방법.
# 설치미술, 영상, 소리...아카이브의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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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주 작가
김진주는 경기상상캠퍼스(이하 상캠)와 인연이 꽤 깊다. 지난해 상캠 내 경기청년문화창작소가 개장할 때 전시를 비롯한 아카이브(archive) 작업을 맡고서 부터다. 2년 전, 처음 제안을 받아 그 때부터 상캠은 물론 이 일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상캠에 대한 아카이브의 첫 단추를 꿴 셈이다. 상캠 일대가 과거 정조대왕의 왕실 논밭이었다는 사료부터 시작해 농생대 시절 학생들이 인근 비행장에서 날아드는 비행기 소리를 듣고 비행기종을 맞추는 놀이를 했다는 일화, 농생대가 상캠으로 변모하기까지 버려졌던 기간 숲의 모습 등 상캠의 과거를 모두 자료로 만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아카이빙을 이뤄 낸 그는 사실 ‘아카이브’라는 단어는 어떤 분야와 접목하느냐에 따라 구현되는 바가 달라진다. 김진주는 자신의 작업을 크게 다섯 단계로 설명한다.

"‘수집하기’부터 시작이 돼요. 일단 수집한 뒤에는 기록(기록하기)을 해야겠죠. 수집하고 기록된 것 들은 다시 재생(재생하기)합니다. 재생 후에는 회복(회복하기)이 따라 옵니다. 보충하면 회복은 수집과 기록, 재생의 과정을 통해 다시 찾은 기억을 더듬는 사색의 시간이라 할 수 있죠.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 종내에는 ‘보존하기’로 이어집니다."

김진주가 말하는 일련의 아카이빙은 설치미술로 재현되기도 하고, 영상이나 소리로만 구성되기도 한다. 또 이미지를 추출해 디자인을 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웹 작업을 하기도. 상캠의 아카이브는 이렇게 탄생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김진주는 현재 상캠의 변화하는 과정을 수집 중이다. 내년 경기천년에 맞춰 다시 한 번 상캠의 아카이빙을 계획하고 있다. 더 나아가 상캠과 관련(푸른지대)된 상품기획도 하고 있다는 그는 스스로 예술작가로서의 모습을 고집하지는 않는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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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주 作 푸른 시간(상캠)을 기억하는 다섯 가지 방법.
"행정기록도 훌륭한 예술적 아카이브의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제가 뭘 하는 사람이라는 ‘특정’은 중요치 않아요. 이중적이면서도 양극적 감성이 공존한다고나 할까요. 요즘 가장 중요하게 고민하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잘 놀아야 한다는 거죠. 잘 놀아야 뭘 해도 잘 되니까요."

회화를 전공해 아카이브부터 설치미술 작가, 팟캐스트 운영자 등 경계를 넘나드는 기획을 하고 있는 김진주. 낯설지만 뚜렷한 실체를 지향하는 그의 작업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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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그룹 비기자의 짓거리 투어.
# 사회참여, 현장을 만드는 예술가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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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그룹 비기자 대표 최선영
창작그룹 비기자는 이름에서 성향을 엿볼 수 있다. 이기는 혹은 져야 하는 현실에서 비길 순 없을까 하는 물음으로 탄생한 비기자는 최선영·이재환 부부가 이끌고 있다.

최선영 대표는 비기자에 대해 "사실 어차피 한 쪽은 이기거나 질 수 밖에 없죠. 그게 현실이니까. 다만 서로 비기는 현장을 문화예술적 방법으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가 커뮤니티 아트를 많이 해 온 것도 이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짓거리 투어’ 같은 게 대표적이다. 일정한 공간에서 예술가들은 미리 거점을 잡고 길을 안내한다. 그러다 관객과 대화를 시도하고 첫사랑에 대해 물으며 칵테일이나 종이학을 건넨다. 때론 어떤 모습으로 환생하고 싶은 지도 질문한다. 다른 프로그램으로는 ‘우주보따리’가 있다. 공연이지만 전시장처럼 미술작품을 설치하고 시나리오 안에서 배우는 환경이나 장애, 수업 등에 대한 고민을 관객과 나눈다. 소위 ‘라이브 아트 퍼포먼스’를 이어 나가고 있다. 비기자의 작업은 사실 사회 참여에 가깝다.

최 대표는 "10여 년 전 처음에는 특수학급 보조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는데, 그 때 공공프로젝트에 참여했다"며 "장애우 등 소외이웃 등에게 관심을 갖다 보니 작업 또한 자연스레 그것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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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그룹 비기자의 우주보따리 공연.
비기자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흔히 볼 수 있는 우유박스(플라스틱)를 활용해 환풍기와 자동차 에어컨필터를 조합해 공공청정기도 만든다. 2만∼3만 원의 재료비로 가능하다. 공모사업으로 선정돼 시민들과도 만났다. 상캠에 들어와서는 다른 입주 청년들과의 협업도 준비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오락기(조이스틱)를 설치해 한 게임에 100원인 게임기에 돈이 가득차면 이를 빼서 상캠 청년들과 나눈다. 연말에는 음반도 낼 예정이다. 랩이나 가사도 직접 썼고, 프로듀싱도 직접 할 예정이다. 이미 화장실에서 녹음한 1집의 경험이 있으니 장비나 기술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너무 많은 분야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최 대표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그 때 그 때 메세지 마다 필요한 작업은 장르별로 다르게 진행할 뿐 입니다. 공기청정기처럼 일상에서 하던 작업이 공모사업과 맞을 경우 신청해서 사업도 진행하고요. 중요한 건 현장이기 때문에 현장을 만드는 예술가 그룹의 역할을 다해야죠."

박노훈 기자 nhp@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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