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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락기 시조시인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 올 한가위 귀성길. 초가을의 빛 고운 산하를 지나갈 때 완상할 무궁화 꽃단지를 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나라꽃 무궁화.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나 ‘삼천리강산에 우리나라 꽃’이라는 애국가나 동요 구절이 무색하다. 너무 흔히 듣고 불러온 꽃이기 때문일까. 어디에나 있는 것 같지만, 실제 무궁화는 애국가의 영상에 나오는 모습처럼 그리 흔하지 않다. 본인이 살고 있는 지역만 해도 일부러 찾아봐야만 학교나 아파트단지 울타리 언저리에서 볼 수 있을 정도다. 이 시대에 복원된 창경궁에도 거의 안 보인다. 필자는 참담한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을 직접 겪지 않았다. 딱히 애국심 운운하며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이른바 국화(國花)라 일컬어지는 무궁화가 이처럼 세상에 소홀히 비춰지는 것이 안타깝다. 상당 기간 이런 생각을 해온 필자에게 언뜻 마주하는 무궁화는 반가울 따름이다. 역경의 세월을 모질게도 살아남은 무궁화(無窮花)야말로 크나큰 그릇이라 하겠다.

이름 그대로 다함이 없는, 끝없이 피어나는 꽃. 말살하려고 뽑아버리거나 혹은 측간 주변에 심어 천대시했던 일제강점기에도, 유사 이래 많은 외침에도 어엿이 살아남아 이 땅 이 나라를 지켜왔으니 말이다. 무궁화는 약 4천 년 전 고조선 11세 도해단군 때에 천지화라 불렸다고 한다. 이는 신라 화랑의 전신격인 천지화랑의 상징이 됐으며 환화, 훈화, 근화, 목근지화 등으로도 불렸다. 이럴진대, 구한말에 작사된 애국가 속의 ‘삼천리’는 다만 한반도의 상징적 의미일 뿐, 무궁화는 예전의 우리 땅 만리장성 동북방의 광대한 영역에 걸쳐 피고 있었지 않은가. 그 수종 또한 국내 개량 100여 품종을 비롯해 전 세계에 400여 종이 있다고 한다.

이럴 때 저 무궁화의 화신, 류달영 선생이 떠오른다. 1960~70년대에 무궁화 품종 연구 육성에 애쓰시던 모습을 매스컴으로 접했던 필자로서는 그 어른의 열정을 잊을 수 없다. 새아침, 배달, 한빛, 옥토끼, 아사달…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새로운 무궁화 품종을 탄생시킬 때마다 붙인 이름. 순수 한글. 1930년대 심훈의 소설 「상록수」의 실제 주인공 최용신과 함께 농촌계몽운동을 벌였던 분. 무궁화는 이런 분 때문에 용기백배해 여태까지 끈질기게 살아왔는가 보다. 누천 년간 이 나라 땅에 살아온 이 꽃을 구한말 남궁억과 윤치호 선생이 나라꽃으로 명명했다고 해서 국화가 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아직까지도 공식 국적이 없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나라꽃으로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11차례 국회 입법 발의가 있었으나, 통과된 게 없다고 한다. 특별히 표를 얻을 만한 정치적 이슈가 아니어서일까. 차라리 그대로 둘 일이다. 오랜 세월 동안 국화로서 국민들 속 깊이 배어온 관습이 지키고 있다.

한편, 전 정부에서는 작년 8월 ‘무궁화의 의미 확산과 선양방안’ 연구용역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기초자치단체로는 홍천군이 무궁화로 특화된 고장이라 하겠다. 무궁화로 디자인한 그 군의 심벌마크에다가 무궁화 가로수길, 무궁화 역사관과 수목원, 무궁화마을 등을 조성했다. 뜻깊은 관람을 통해 자연스레 나라사랑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 무궁화 단지는 태부족하다고 본다. 정부 관련 당국에 제안한다. 신설 아파트 단지나 고궁의 정원 및 도시 공원에 심는 수목 속에 의무적으로 무궁화 수종을 넣도록 하자. 시골은 물론이려니와 특히 많은 사람이 오가는 도시지역에 말이다. 민관 합동 ‘무궁화 심기 운동’이라도 벌이면 좋겠다. 비록 전 정부의 무궁화 선양 연구용역이지만, 좋은 점은 이어받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국화는 함박꽃이라고 한다. 여름부터 늦가을까지 피는 꽃 무궁화! 장차 찬란한 통일한국의 나라꽃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기를 고대한다. 예나 제나 피고지고, 애국가의 삼천리 화려강산에 걸맞은 무궁화 세상을 꿈꿔 본다. 끝으로 졸작 시조 한 수 띄운다.

- 무궁화 꽃말 -
실눈 뜨고 / 스리슬쩍 / 꽃 속을 어디 보라 ∥ 하얀 몸피 / 붉은 단심 / 어이 그리 살뜰한지 ∥ 견뎌온 / 그 오랜 날의 / 그리멘가 꿈 빛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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