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힘들게 일해 모은 돈 5천만 원을 장학금으로 기부한 조영숙 할머니가 인천시 동구 배다리마을 집 주변 골목을 청소하다가 자신이 심은 화초 옆에서 활짝 웃고 있다.  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힘들게 일해 모은 돈 5천만 원을 장학금으로 기부한 조영숙 할머니가 인천시 동구 배다리마을 집 주변 골목을 청소하다가 자신이 심은 화초 옆에서 활짝 웃고 있다. 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조영숙(83·인천시 동구)할머니는 오랜 만에 은행을 찾았다. 평생을 차곡차곡 모은 돈을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에게 전하기 위해서다.

당초 조 할머니는 사후에 모든 돈을 기부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최근 건강이 좋지 않음을 느끼면서 평생 모은 돈을 미리 기부하기로 결심하고 은행을 찾은 것이다.

돈을 담아갈 보따리까지 준비해 갔던 조 할머니에게 창구직원은 수표를 건넸다. ‘5천만 원’이 적힌 수표 한 장이다. 너무도 가벼운 종이 한 장은 조 할머니가 수십 년간 피와 땀으로 모은 평생의 재산이다.

7살 부모님을 따라 처음 인천에 온 조 할머니는 배움에 꿈이 많은 아이였다. 소학교도 1학년에서 3학년으로 월반할 정도로 머리도 좋았다. 열심히 공부해 언젠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3년도 채 다니지 못한 채 배움의 꿈을 접어야 했다.

이후 조 할머니는 집안일에 서툰 어머니를 대신해 동생들을 돌보는 일을 도맡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어머니의 녹두전 장사를 도우며 생계를 위한 일도 시작했다. 참외 장사 등 각종 장사부터 시작해 기름공장 잡일, 분식집 등 지금까지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다. 자신을 챙기기보다는 남을 위한 삶, 돈을 쓰기보다는 아끼는 삶을 사는 게 익숙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조 할머니는 동네 환경지킴이로 일하며 조금씩 받는 돈도 그대로 모으고 있다. 조 할머니의 옷 중 1만 원을 넘는 옷은 하나도 없고, 이마저도 다 오래전에 산 것들이다. 매주 목요일 복지관에서 가져다 주는 반찬도 이웃들에게 모두 나눠준다. 틈틈이 모은 병과 폐지는 내다 팔지 않고 이를 모으러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 준다.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지낸 지 20여 년째다. 자신의 몫을 먼저 챙기는 사회에서 혼자 하는 나눔이 버거울 때도 있지만 그만두지는 않는다.

조 할머니는 "40대에는 인천의 한 양로원에 매달 한 번씩 가서 노인들을 위해 직접 사온 재료로 반찬을 해주고 올 때가 있었는데, 어느 날부턴가 원장이 반찬 메뉴를 정해주기 시작하더라"며 "이렇게 가끔 내가 하는 일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으면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그러려니 한다"고 애써 웃어 보인다.

이제 조 할머니의 바람은 하나다. 자신이 기부한 돈으로 어려운 학생들이 공부에 대한 꿈을 접지 않게 되는 것이다. 조 할머니의 기부금은 인천 공동모금회를 통해 저소득 대학생 장학금으로 쓰일 예정이다.

조 할머니는 "더 많이 도와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오히려 아쉬운 마음"이라며 "학생들이 배움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서 나라를 위한 훌륭한 인재가 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김희연 기자 khy@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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