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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구 청운대학교 대학원장
엊그제 어느 산사의 템플 스테이에 다녀왔다. 그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의 흰 머리카락은 적지 않은 세월이 흘러갔음을 알려준다. 비구니 스님의 안내에 따라 불편한 가부좌를 하고 명상을 하려니 익숙하지 않은 몸들이 여기저기서 ‘아이고’하며 저항의 신호를 보낸다. 무리한 자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의 반란에 항복하고 말았다. 이런 자세를 비구니 스님이 잠시 강요한 것은 프로그램 진행상 꼭 필요했다기보다 수행의 어려움을 넌지시 알려 주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으리라.

 탁! 죽비소리에 지그시 눈을 뜨니 ‘비움과 여유’라는 명상 프로그램의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제목도 잘 알지 못하고 허겁지겁 명상 캠프에 오다니! 졸음과 명상의 경계선에서 화들짝 놀란다. 비움이라! 조건반사처럼 장자(莊子)의 세계가 뇌리를 스친다. 텅 빈 충만함! 장자의 세계를 체현(體現)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뒤틀려 신음소리를 내는 몸은 알고 있지 않은가. 장자의 세계는 욕망이 들끓는 방안의 탁한 공기를 맑은 공기로 바꾸는 것이다. 장자의 생각에 꼬리를 물다가 근자에 다시 읽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reau, 1817~1862)의 「월든」이 클로즈업 된다.

 소로우는 월든이라는 연못가에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 동안 새소리, 바람소리, 동물, 식물, 계절의 변화 등을 관찰하며 시골에 사는 여유로움을 세밀히 적었다. 돈과 욕심 같은 보통 사람들의 욕망을 거절하고, 삶의 진정한 지혜를 찾아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의 삶은 꼭 「월든」의 세계와 다른 면도 많았음은 그의 ‘시민불복종론’과 같은 글은 보여준다. 그는 세금 내기를 거절하였기 때문에 하룻밤 감옥에서 보내야만 했으며, 미국 남부의 노예제도와 멕시코와 전쟁을 벌인 일에 대해서 미국 정부에 대해 항의하기도 했다. 욕심을 버리고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과 함께 하는 즐거움을 노래했지만 고집 센 그는 주변과 때때로 불화(不和)했다.

 미국 초월주의자들의 선생님 격인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 ~ 1882)의 집에 숙식하면서 그에게서 많은 것들을 배웠지만 결국 그와도 갈등 속에서 헤어지고 말았다. 「월든」과 같은 작품을 남겨 놓았지만 그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던 듯싶다. 그러나 그의 「월든」은 200여 년이 지난 후에 더욱 빛을 발한다. 버려야 얻을 것이 많다는 그의 생각에 공감해서였을까, 법정 스님도 생전에 월든 연못가를 찾아 소로우의 발자취를 느껴보기도 했다. 「무소유」, 「버리고 떠나기」, 「텅 빈 충만함」, 「홀로 사는 즐거움」과 같은 책들의 제목만으로도 소로우의 향기가 물씬 배어난다.

 탁! 죽비소리와 함께 법정과 소로우에 대한 생각은 욕심을 비우라는 명상 캠프의 슬로건으로 돌아온다. 비우는 수행으로 ‘소금 만다라 명상’을 비구니 스님은 제안한다. 파스텔 가루를 소금에 넣어 다양한 색상의 소금을 만들고, 이 소금으로 컬러풀한 만다라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다. 너댓 명이 한 조가 돼 심혈을 기울여 완성하고, 옆 팀보다 우리 그림이 더 멋져 보인다고 약간 상기돼 있을 때, 스케치한 그림 위에 있는 컬러 소금들을 흐트려 유리병 속에 넣으란다. 어떻게 공들여 만든 것인데! 모두 멈칫 했지만, 애써 얻은 것도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수행법일 것이라는 생각이 스쳐간다. 머뭇거리는 서로의 눈빛을 감지하며 어쩔 수 없이 병 속에 컬러 소금을 쏟아 붓는다. 아쉬움과 허망함이 교차한다. 아니, 버리고 나니 시원함도 약간 맛 물려 있지 않았을까 싶다.

 탁! 로키산맥을 등반하던 사람이 처음에는 필요해 보이던 물건들을 배낭에 잔뜩 넣어 출발했지만, 중턱에 이르러서는 하나, 둘 버리고 가벼운 배낭으로 산을 넘던 TV 프로그램이 불현듯 오버랩 된다. 꼭 필요한 물건만 남기고 버리지 않았다면 산을 넘지 못했을 것이라는 그 등반가의 멘트가 메아리를 울린다.

 산사를 나서는 오솔길에, 나무들은 붉게 물들기 시작한 나뭇잎을 하나, 둘 내려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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