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변했다, 남편이 변했다고들 한다. 배우자가 변했다는 것은 세월에 따라 늙어간 그이 육신을 말하는 것은 아닐테다. 육신의 노쇠는 절대 불변의 법칙이라 이를 놓고 따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본인 스스로도 그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면 사회적 합의를 통해 당신 생(生)의 동반자로 선택한 배우자가 변했다는 것은 정확히 ‘성격적인 그 무엇’을 가리키고 있을 것이다. 그 변화로 인해 상대편은 실망했거나 좌절하거나 현재 또는 미래는 암울하고 결혼 생활의 재미와 행복, 희망이 없다고까지 판단할 수 있다. 결혼에 따른 피해의 본질을 배우자의 성격 변화에서 찾고 있는 셈이다. 물론 남성의 테스토스테론과 여성의 에스트로겐 등의 호르몬 변화는 배우자의 성격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남성 평균 32세, 여성 평균 30세에 결혼하는 세상 풍토를 돌이켜 보면 당신의 배우자의 성격은 결혼 전후로 변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공자가 말한 서른 살은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 자신만의 기초를 다 정립한 ‘이립(而立)’의 시기이다. 더 유연하게 보더라도 서른 살이 되기까지 한 개인은 가정·학교·직장이라는 조직 생활을 겪고 그 속에서 자신의 습성과 생활 철학, 인생의 장단기 비전이 담긴 가치관이 2·3차에 걸쳐 정립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아내가 변했다, 남편이 변했다는 식의 주장은 어떤 비교 시점을 가지고 있는 걸까. 이는 배우자와의 결혼 전 연애시기, 즉 짝짓기 시기가 대부분으로 수컷이 암컷을, 또 암컷이 수컷을 차지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혹은 호르몬 분비에 의한 ‘화학적 마법’에 걸려 무한한 배려와 이해심을 발휘하는 시기이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 줄 뿐만 아니라 비위에 거슬리는 부분도 쉽게 눈감아 준다. 비판과 지적질보다는 헌신과 손해의 감수가 더 일반적이다. 몸과 마음은 본능적으로 마음에 드는 이성을 배우자로 전환하기 위한 전략과 전술에 충실하다. 이 시기 이성의 성격은 그의 본연의 성격이라기보다는 짝짓기 시기의 인류가 가진 보편적인 성격에 가깝다. 오히려 배우자가 결혼을 통해 가지려 했던 꿈과 비전이 팍팍한 현실 속에서 좌절되면서 나오는 ‘잦은 신경질’을 성격 변화로 오판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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