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연.jpg
▲ 김사연 수필가
요즘 ‘남한산성’이라는 영화가 국민의 관심을 끌고 있다. 380년 전, 청나라 10만 대군이 침략한 병자호란을 피하기 위해 인조와 조정 대신들이 백성을 버린 채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가 혹한의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온갖 고생을 한 영화다.

 피난 47일 만에 항복한 조선의 왕 인조와 장남 소현세자는 신하를 상징하는 복장을 걸치고 남한강 나루터인 삼전도(三田渡)에서 평소 오랑캐라 깔보았던 여진족의 왕 ‘칸’앞에 무릎을 꿇었다. 세 번 절하며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찧은 치욕의 역사를 그린 영화가 작금에 흥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북한의 핵 도발로부터 대한민국 안보를 책임져야 할 정치인들이 미래 대비 없이 말장난이나 하는 현 시국에 대한 국민의 경고이기도 하다.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40년 전 조선은 7년간 임진왜란을 겪었다. 당시 선조가 일본 내의 움직임을 염탐하기 위해 사신을 보냈을 때 한 사람은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으니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에 다른 사신은 일본은 절대로 조선을 침략하지 않을 것이라며 왕을 안심시켰고 무능한 통치자와 측근들의 오판으로 일본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9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시국이었다. 정묘호란이 화의로 끝난 후부터 예조판서 김상헌은 군비 확보와 북방 군사시설 확충을 주장했지만 이조판서 최명길은 국가 안위를 위해 청나라와의 화친을 주장했다. 외적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기 위한 군사대비 없이 평화만을 갈구하던 인조는 결국 청나라 10만 대군의 침공을 받았다. 당시의 첨병 부대인 기병을 앞세운 청나라 군대가 한양까지 달려오는 동안 조선의 군대로부터 아무 저항도 받지 않았고 겨우 한 달 만에 궁궐을 장악했다. 그것이 인조와 조선 백성의 굴욕의 역사가 시작된 병자호란이었다. 조선의 왕과 조정은 남한산성으로 몸을 피하지만 청의 포위작전으로 더 이상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성 안에 고립된다. 혹한의 추위와 굶주림, 세자를 인질로 청에 보내고 항복하라는 적의 무리한 요구 앞에 가진 것이라고는 입밖에 없는 충신들은 죽기 위해 싸울 것이냐 아니면 살기 위해 항복할 것이냐 선택의 기로에서 47일간 치열한 논쟁을 펼쳤다.

 당시 민심은 어떠했는가. 중신들은 왕의 위엄을 위해선 굶주리는 백성의 양식을 빼앗아서라도 말을 살찌워야 한다고 거침없이 내뱉는다.

 척화파 김상헌이 얼어붙은 강을 함께 건너던 노인에게 살 길을 마련해 줄 테니 함께 남한산성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집에 손녀가 혼자 있고, 조선의 왕은 자신에게 아무 것도 해 준 것이 없기 때문에 여진족이 온다면 차라리 그 쪽에 붙어 살아갈 방도를 모색해 보겠다며 거절한다.

 이시백은 병자호란 직전, 남한산성에서 야간훈련을 실시하고 군사들을 격려했으며 왕이 산성의 형세와 방어 상황을 묻자 천연의 요새지만 군량이 부족한 것이 걱정이라고 보고한 충신이다. 그러나 척화인지, 화친인지를 묻는 주화파 최명길의 질문에 다가오는 적을 잡는 무관일 뿐이라고 대답하자 영의정은 그를 무고했고 무능한 인조는 곤장 형에 처했다.

 이 같은 정황을 잘 알고 있는 여진족 장수는 최명길에게 항복을 강요하는 문서를 건네주며 남한산성은 내부로부터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김상헌은 최명길에게 "그대와 나, 그리고 우리가 세운 임금 같이 낡은 것들이 사라져야 백성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초근목피로 끼니를 때우며 수소폭탄 보유국이 되었고, 중국은 사드 보복을, 미국은 FTA 협상파기로 협박하고 있는데 힘없는 정부는 가능성 없는 대화를 북한에 구걸하고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들어온 ‘타국을 침략할 줄 모르는 단일 배달 백의민족’이란 자화자찬은 현 시국에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꿈과 이상이 아닌, 외세에 침량당하지 않는 힘을 기르는 것뿐이며 그런 면에서 핵무기의 기초가 되는 원자력발전소를 포기하면 안 된다. 영화 ‘남한산성’은 ‘무엇이 지금 백성을 위한 선택인가’에 대한 고민과 화두를 위정자들에게 던져주고 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