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대정부 질문석상이 첫날부터 난장판으로 전락했다.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이 진행된 국회 본회의장은 `XX' `미친놈' `양아치' 등 원색적 욕설과 고함, 비난과 야유 등으로 아수라장이나 다름없었다. 질문다운 질문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핏발선 목소리와 삿대질이 난무하는 광경에 방청객들도 자리를 떴다. 방청석에는 견학나온 학생들도 자리잡고 있었다. 흥분한 의원들의 목소리가 의사당을 울렸지만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킨 의원들은 총 272명중 40여명에 불과했다.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의 대립과 고성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복잡한 구도가 형성되고 있는 대선이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어떻게해서든 상대방을 꺾어누르려는 집권지상주의가 정치판을 룰도, 원칙도, 금도도 없는 전장으로 만들고 있다. 대선까지 남은 2개월여가 걱정스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국회 대정부질문은 원래 총리와 각료 등을 출석시킨 가운데 정치 외교 국방 경제 사회문화 등으로 부문을 나눠 정책이나 업무내역의 문제점과 의문점 등을 캐묻고 답변과 시정을 요구한다는 것이 기본취지다. 의원들로서는 많은 사전준비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언론을 통한 유권자들의 이목을 겨냥해 질문자로 선정되기 위한 내부경쟁과 신경전도 치열하다. 그러나 이제 `질문자'가 `공격수'로 대체된지 오래다. 그것도 `주공격수'와 `보조공격수'로 역할이 분담되고, 동료의원들은 `엄호사격'을 맡게됐다. 공격수들의 무기는 면책특권에 힘입은 `설(說)'과 폭로이며, 동료들의 무기는 고성과 야유, 삿대질이다. 고개를 돌리고 싶지만 이것이 우리 국회 본회의장의 현실이다. 이때문에 의원들이 준비한 질문원고를 읽고 총리및 관계부서 장관들의 답변을 들은 뒤 다시 보충질문을 벌이는 현재의 방식을 바꿔서 소모적 정치공방에 대한 완충장치를 둬야한다거나 면책특권의 범위를 제한해야한다는 등의 논의도 있지만 아직 별다른 개선이 이뤄지지않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사정은 국회 안이나 국회 밖이나 별반 다르지않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매일 쏟아내는 수십건의 성명은 총칼만 없을 뿐 상대방에 치명상을 주겠다는 `살기(殺氣)'가 희번덕거린다. 온갖 내용을 담고있는 `설'과 폭로공방은 끝없이 이어지고있고, 정치인인들의 무분별한 이합집산은 `철새'들을 양산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난장판 정치에서 국회만 난장판이 되지않길 기대하기도 난망한 것이다. 결국 방법은 하나뿐이다. 난장판인 정치풍토의 쇄신이다. 그렇지않은한 달라진 정치의 모습, 국회의 모습을 기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 가슴을 무겁게 한다. 도대체 실마리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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