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양봉 옷을 입은 아이들은 꼭 병아리 같다. 작고 귀여운 아이들이 룰루랄라 정원을 지난다. 아이들은 목적지에 다다르자, 자신보다 훨씬 작은 생명체 앞에서 깜짝 놀란다. 꿀벌이다. ‘엥엥’ 거리며 벌통을 중심으로 셀 수 없는 벌들이 모여 든다. 상기된 표정의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말을 건넨다. "벌들이 다가와도 무서워하지 말아요. 갈 길을 찾는 것이지 해치러 온 게 아니니까 안심해요."
 시간이 지나자 하나 둘 씩 벌통 앞에 아이들 모여든다. 이내 벌을 손바닥 위에 놓기도 한다. 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 삼매경에 빠진 모습이다. ‘꼬마 도시 양봉가’ 수업은 이렇게 아이들과 친숙해지고 있다.

▲ 도시 양봉가가 아이들에게 도시 양봉에 대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 아이와 부모, 모두가 좋아하는 수업

경기상상캠퍼스(이하 상상캠)가 운영 중인 ‘꼬마 도시 양봉가’는 아이들이 꿀벌과 꿀벌을 둘러싼 생태를 배우고 양봉을 체험할 수 있는 수업이다.

상상캠 관계자는 "꿀벌이 무서울 법도 한데, 아이들과 부모들 모두 가장 좋아하는 수업으로 꼽힌다"고 전했다.

수업은 총 2주차 수업으로, 3월부터 11월까지 월별로 진행된다. 첫 수업은 꿀벌에 관한 기본 내용으로 꿀벌과 나비가 없어지면 우리들이 사랑 하는 먹거리가 점점 사라질 수 있다는 환경을 가르친다. 여기에 벌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주고 벌들의 종류를 배운다. 이후 꿀벌정원으로 나가 벌통을 관찰한다. 꿀벌의 알, 애벌레, 번데기, 꿀이 다양하게 든 벌집을 직접 꺼내 만져보기도 한다.

두 번째 수업에는 시기마다 다른 특별활동이 진행된다. 봄에는 꿀벌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벌통을 예쁘게 꾸며주기도 한다. 벌꿀이 모이는 늦여름에는 꿀을 채취해 먹어 보기도 한다. 찻숟가락 하나 만큼의 꿀이 모이기 위해 한 마리의 꿀벌이 평생을 움직인다고 배운 아이들은 꿀벌들에게 꿀을 얻어 먹는 대신 고사리 같은 손으로 꽃을 심기도 한다.

▲ 도시 양봉가 김진아 씨가 아이들에게 도시 양봉에 대한 이론 수업을 하고 있다.
# 최적의 환경은 도시…생태계의 보고(寶庫)

상상캠에서 수업을 진행 중인 도시 양봉가 김진아 씨는 ‘왜 도시 양봉인가’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인간의 관점에서 척박해 보이는 고온건조한 도시의 환경은 꿀벌에게는 최적의 환경입니다. 낮은 기온과 높은 습도는 꿀벌의 질병에 원인이 됩니다. 농작물 중심의 단식 재배가 아닌 조경을 위한 다양한 꽃의 식재는 도시의 꿀벌들에게 이른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충분한 먹이를 공급해 월동 성공률도 시골에서의 양봉보다 높죠."

흔히 자연을 배경으로 한 양봉이 일반적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미 영국 런던의 빌딩 옥상은 꿀벌정원이 흔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 만큼 서양에서는 생소한 일이 아니다.

꿀벌의 중요성은 이미 과거에도 강조돼 왔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 식량작물 가운데 63%가 꿀벌의 꽃가루 받이에 의해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때문에 꿀벌의 개체수 감소는 인간의 식량문제와 직결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는 4년 안에 멸망한다’는 말했다. 환경지표종이자, 수분매개 곤충인 꿀벌이 도시환경에서 잘 살아준다는 것은 인간이 살기에도 좋은 환경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작은 꽃들이 피고 지는 자연스러운 도시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아이들이 벌통에서 나온 꿀벌을 만져보고 있는 모습.
김 씨의 양봉 도전 계기는 다소 우연성이 짙다. 수원시 평생학습관에서 성인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정보를 듣고 참여하게 됐다. 1년 학습과정을 마친 그는 이후 도시 양봉 전문기업인 ‘어반 비즈’에서 한 달간 강사과정을 마쳤다.

"저도 첫 수업을 받을 때는 굉장히 떨었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꿀벌들이 귀엽게 다가왔습니다. 양쪽 다리에 꽃가루를 하나씩 붙이고 벌통으로 들어오는 모습은 기특하면서도 안쓰럽고, 참으로 귀여워서 벌통 입구에 앉아 한참을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이젠 겉모습만 봐도 어린 벌 인지 늙은 벌 인지도 구별할 수 있습니다."

# 실버세대에겐 일, 소득, 경험 ‘1석 3조’

아이들 대상 수업 뿐 아니라 성인을 위한 도시 양봉가 과정도 맡고 있는 김 씨는 도시 양봉을 특히 실버세대에게 권유한다. 옥상이나 마당 등 남는 공간에 벌통을 두고 키우게 되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벌 관리를 해도 되고, 이를 통해 규칙적인 신체활동도 할 수 있으며, 경제적 소득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인과정을 할 때 일부 성인은 일부러 침에 쏘이려고 팔 다리를 노출하는 경우도 있어요(웃음). 소위 ‘봉침’ 효과를 바라는 것이죠. 실제 효과가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이든 어른에게 다른 연령대보다 벌(침)이 더 해롭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습니다. 그리고 귀농, 귀촌 이전에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벌을 키워 봄으로써 본격적으로 귀농을 했을 때의 성공 가능성 또한 높여 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양봉에 쓰는 벌들은 대개 서양벌이다. 토종벌은 야생성이 강하고 가격도 비싸기 때문에 통상적인 양봉에 적합하지 않다.

▲ 도시 양봉가가 벌통에서 꿀벌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경기문화재단 제공>
"서양 벌은 이미 가축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주의할 점은 반드시 있죠. 벌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분봉(벌들의 분가) 등은 주변 이웃을 불편하게 할 수 있어 적절한 관리가 되지 않으면 민원 발생 등으로 분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전문가에게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도시 양봉. 양봉을 접하는 김 씨의 마음가짐은 순수 그 자체다. 주변에 꿀을 선물하는 재미가 있다는 그는 선물 받은 사람들이 그 꿀의 가치를 인정해 줄 때 은근히 기분이 좋다고 말한다.

"벌통이 꽉 막힌 것을 수확해야 질이 좋습니다. 덜 막힌 건 수분이 많아 상하거나 발효가 될 수 있죠. 일부 양봉가들은 벌통에 항생제나 살충제, 설탕 등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제 양봉은 벌들이 하는 일을 존중해 주고, 다만, 위험요소가 생기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죠. 그게 도시 양봉가의 역할 아닐까요."

박노훈 기자 nhp@kihoilbo.co.kr

김재학 기자 kjh@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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