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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사연 수필가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는 ‘트윈스터즈’는 부산에서 태어난 쌍둥이 자매가 생후 3개월 만에 프랑스와 미국으로 각각 입양된 후 25년 만에 기적적으로 상봉한 내용의 영화다. 미국 국적의 ‘푸터먼’은 할리우드에서 영화배우로, 프랑스 국적의 ‘보르디에’는 패션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보르디에’는 SNS를 통해 본 ‘푸터먼’이 자신과 얼굴 모습이 너무도 닮았다는 사실에 관심을 갖게 된다. 신상 정보를 확인한 결과 상대가 자신과 같은 1987년 11월 19일에 태어났으며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고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시작했다. DNA 검사를 한 결과 쌍둥이 자매라는 사실을 확인한 그들은 미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만남을 가졌다.

 첫 상봉의 순간, 너무도 닮은 외모에 그들은 "신기하다!"는 감탄사와 웃음만 터뜨릴 뿐이었다. 두 자매는 가족의 뿌리인 친부모를 찾기 위해 한국의 입양기관을 통해 출생의 비밀을 수소문했고 관계자로부터 생모를 찾았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하지만 당시 미혼모였던 생모는 입양 사실은커녕 출산조차 없다며 상봉을 거절했다. 두 자매는 실 같은 희망을 안고 조국을 방문했지만 끝내 생모를 만나지 못한 채 각자의 현실로 돌아가야 했다. 아마도 미혼모라는 사실을 숨긴 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생모는 딸들의 방문 사실을 방송 보도를 통해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간혹 시골에 거주하는 노모와 입양 간 딸이 상봉하는 경우도 있다. 시청자들은 자식을 버린 모진 모정에 무슨 미련이 있어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너 먼 길을 찾아 왔냐며 비분강개(悲憤慷慨)한다. 하지만, 당시엔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어서 자식을 굶겨 죽이지 않기 위해 임시로 보육원에 맡길 수밖에 없었고 훗날 다시 찾아오겠노라 다짐했지만 바쁘게 살다 보니 외국으로 입양한 줄도 몰랐다는 변명 아닌 하소연에 시청자들은 주인공 모녀와 하나가 되어 눈시울을 적신다.

 남과 북의 이산가족이 눈물의 상봉을 마친 후 다시 현실로 돌아가듯이 입양 간 자식들은 애타게 그리던 생모를 남겨둔 채 양부모의 곁으로 떠나간다. 그들의 신변에 변화가 없는데도 굳이 생모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명절 때마다 차량 정체를 무릅쓰고 고향을 찾아 민족이 대이동 길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자신의 뿌리와 가족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대열에 동참할 수 없는 이들도 있다. 어느 노부부는 10년 전 외아들을 미국의 대학에 유학 보낸 후 그동안 겨우 세 번 만나봤다며 눈물짓는다. 그 눈물은 영면에 드는 마지막 순간만이라도 자식의 손을 잡고 싶다는 애틋한 바람이리라.

 나는 늦둥이 딸을 자사고 기숙사에 보낸 후 회한에 잠기곤 했다. 딸과 내가 가족이란 울타리에서 지낼 수 있는 세월은 겨우 인생의 삼분지 일뿐인데 고등학교에 이어 대학까지 먼 곳으로 유학을 보내면 그나마도 기간이 단축되기 때문이다.

 지방이라도 국내에 거주할 때 급한 일이 생기면 한밤중이라도 차를 몰고 딸 곁으로 달려 갈 수 있었지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지금은 공부에 지쳐 몸살을 앓아 누워 있다는 소식을 들어도 가슴만 쓸어내릴 뿐 부모의 도리를 제대로 하지 못함을 아쉬워하고 있다.

 하지만 딸은 결혼 후 미국에서 영원히 자리 잡을지도 모른다며 철렁 내려앉은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빨리 포기하는 것이 현명한 길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조기 유학을 보내느라 어린 자식과의 생이별은 둘째 치고 부부가 기러기가족으로 지내다가 가정이 파탄하는 이웃들을 볼 때마다 진정한 가족의 행복이란 무엇일까 더 깊은 고뇌와 번민에 잠긴다.

 비록 내 딸은 외국에 있어도 아내는 곁에 있고 두 아들은 서울의 하늘 아래 살고 있음을 감사히 여기고 있다. 차례를 지내고 썰물처럼 사라진 아들과 손녀들의 여운을 벽에 걸린 가족사진으로 달래본다. ‘가까운 이웃이 멀리 떨어져 사는 친척보다 낫다’는 속담이 피부에 와 닿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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