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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호림 칼럼니스트
2017년 벽두부터 미국에서는 거의 70년 전 조지 오웰의 소설인 「1984」가 아마존 베스트셀러 리스트 1위에 올랐다. 왜일까?

 조지 오웰은 사회주의 신봉자였다. 30대 초반에 그는 공화주의자의 편에서 파시즘과 싸우기 위해 스페인 내전에 참전, 마르크스주의 통일노동당의 민병대에 입대 후, 부상을 당해 후송되고 공산주의경찰에 사찰을 받게 된다. 그는 코민테른의 교조적인 행동이 프랑크의 파시즘과 똑같은 전체주의 모습임을 발견하자 곧 환멸을 느끼며 스페인을 탈출한다. 그 후 스페인 내전의 진실을 알리는 ‘카탈로니아 찬가’를 집필하고 출판을 타진했으나 선뜻 응하는 출판사가 없었다. 그 당시 영국사회는 사회주의사상이 만연했기 때문에 신문들은 오웰이 말하는 스페인 내전의 진실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그를 반대하는 중상모략 캠페인이 벌어졌다,

 그의 첫 대표작 「동물농장」의 출판 사정도 그러했다. 정보국 직원은 출판사에게 소련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도 있는 작품의 출판을 방해했고, 출판사는 돼지를 지배계급의 대표로 설정한 것은 러시아인들을 화나게 한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러시아와 스탈린에 대한 비판을 주저하는 것은 지적 정직성의 문제라고 생각한 그는 좌파신문기자와 영국지식계급에게 ‘당신들이 몇 년 내에 소련체제나 그 밖의 다른 어떤 체제에 대해 비굴한 아첨꾼으로 혹은 정치 선전꾼으로 행동하고 나서,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의 지적 정직성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마시오. 한 번 창녀는 영원한 창녀입니다’라는 통렬한 질타를 했다. 즉 진정한 자유는 상대가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라도 말할 수 있는 것임을 역설했다. 이는 마치 거짓과 위선에 침묵하는 우리의 언론과 지식인들을 깨우는 외침으로 들린다. 그는 또한 「동물농장」에서 ‘모든 혁명은 실패로 끝난다. 오로지 실패하는 양상이 다를 뿐이다. 대중이 선한 의도로 성취한 혁명은 엘리트 독재계급의 출현과 이들의 권력유지 수단으로 전락하는 악을 생산한다’고 예언했다. 혁명이란 이름으로 권력을 쟁취한 어떠한 정권도 전체주의 독재로 전락하게 되고 개인의 자유는 노예상태로 바뀌어 갈 뿐이라는 것이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1984」는 ‘개인이 없는 세상’을 만든 암울한 소설이다. 개인이란 오로지 ‘빅 브라더’의 철저한 감시와 공포 분위기 아래 살아가는 국가의 도구라는 사실을 통해 전체주의체제를 비판한다. 동시에 전체주의가 어떻게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상징을 조작하고 사상을 통제하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신어’는 개인의 독자적인 생각이나 정치사상이 배제되는 언어로서, 축약된 약어를 사용함으로써 개인의 사고력을 단순화시켜 집권자들의 권력유지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또한 그들이 사용하는 ‘이중사고’는 인간의 마음속에 상반된 신념을 동시에 받아들이게 하는 힘을 말한다. 예를 들면, 당의 슬로건인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과 같은 모순관계를 진실로 받아들이게 하여 개인의 사고체계를 철저하게 통제하고 저항의 싹을 없애 버리려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에서 ‘사실’이란 객관적이 아니며, 당이 진실이라고 말하는 것만이 진실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과학’이란 단어가 있을 수 없고 탈원전 사태에서처럼 과거의 과학적 성취에 기반 된 모든 경험적 사고가 당의 기본원칙에 의해 거부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소설의 주인공은 자유의 가장 큰 위험은 외부로부터가 아니라 자국 정부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진실을 이야기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는 곧 시민의 자유가 없는 전체주의 사회임을 고발하고 있다. 그리하여 ‘거짓이 지배하는 시대에 진실을 말하는 것은 혁명적 행위다’라는 말과 같이 그는 시대의 증인으로 살아왔다.

 지금 우리도 혹 오웰의 시대를 사는 것일까?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난무했던 ‘가짜뉴스’인 ‘탈 진실’(post-truth)이 옥스퍼드사전에서 2016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될 만큼 진실문제가 핫 이슈였고, 이러한 현실이 독자들이 「1984」를 찾는 원인이 되었다. 지난 1년간 이 환상의 나라에서도 거짓과 선동, 위선이 난무한 시간이었다. 정치인들은 권력을 합리화하기 위해 ‘신어’를 즐겨 만든다. ‘적폐청산, 촛불혁명 완성, 보수 불태우기’ 등이 그것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자기생각과 행위는 항상 선이고 반대자들은 악으로 보기 때문에 이런 슬로건으로 정통성을 확립하려 한다. 한편 인간은 권력을 획득하는 데는 매우 능하지만 권력을 행복으로 바꾸는 데는 그리 능하지 못한 것이 역사법칙의 어두운 면이라는 말이 있다. 이 불안정하고 어두운 시대에도 거짓과 위선에 침묵하지 않고 진실을 말하는 증인들이 있어야 이 나라를 전체주의로부터 지킬 수 있다고 오웰이 우리에게 외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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