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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석 인천대교수
현행 헌법은 시행된 지 30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문제점을 여럿 노정했으므로 헌법 개정 필요성이 몇 차례 제기됐다. 현행 헌법 아래 역대 대통령 때마다 권력의 남용과 부패가 발생했고 그 원인은 제왕적 대통령제에 있다는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탄핵정국을 거치면서 개헌의 필요성이 재차 확인됐고, 현재 지금이 개헌을 할 수 있는 좋은 시기란 점에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그리하여 국회는 2017년 1월 1일부터 헌법개헌특별위원회(약칭 개헌특위)를 출범시켜 개헌안 마련과 개헌 홍보 활동을 해왔고,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로서 개헌을 공약에 넣었고 11월 1일 2018년도 정부 예산안을 설명하는 국회 시정연설에서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안 국민투표 실시 일정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렇듯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국민이 공감하고 여야 정치권과 대통령이 동의하고 있지만, 속내는 복잡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정권교체로 여야의 입장이 바뀌어 개헌특위의 외형적으로 활발해 보이는 활동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 개헌안 마련은 답보상태에 있고, 대통령은 개헌이 공약이란 명분으로 국회가 개헌을 주도하지 못할 경우 대통령 주도로 2단계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즉, 국회에서 대통령 권력분산을 핵심으로 하는 권력구조 개편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개헌이 지지부진하면, 정부 주도로 쉽게 합의할 수 있는 기본권 확대와 지방분권 강화를 골자로 하는 1단계 개헌을 내년 지방선거 때 실시하고 권력구조 개편을 핵심으로 하는 2단계 개헌을 그 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대통령의 구상 제안은 개헌을 위한 국회의 적극적인 노력과 개헌안에 대한 여야 정치권의 합의를 촉구하는 것이지만, 오히려 진정한 개헌 목적의 실현을 저해하거나 개헌 자체를 무산시킬 소지가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 무엇을 위한 개헌인가를 고민해서 현행 헌법의 폐단을 제거하는 개헌을 하도록 해야 한다. 6공화국에서 그동안 자주 거론된 개헌론은 명분과 달리 정치권이 자파가 권력을 획득하는데 유리한 권력구조를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제기되었다. 반면 작금 거론되는 개헌론의 주요 논거는 현행 헌법 아래 매 대통령 때마다 드러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 청산이다. 지방정부의 권한을 강화함으로써 중앙정부의 지방정부에 대한 권한을 약화시킬 수 있으나 그것이 절대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제거시키지는 않는다. 지방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제도의 수립도 중요하나 권력구조의 개편보다 더 긴급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번 개헌은 미래의 집권 수단이나 기득권 유지 수단이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데 목적을 둔 정치권력 구조 개편을 개헌의 초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둘째, 대통령 구상대로 정부 주도의 개헌 추진이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대통령의 구상은 정치권이 개헌안을 합의로 도출하지 못할 경우 권력구조를 개편하는 개헌은 2단계에서 추진하고 대통령 주도로 1단계로 기본권 확대와 지방분권을 강화하는 개헌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집권세력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권력구조 개편이란 핵심을 배제하고 ‘개헌을 위한 개헌’을 추진하는데 불과하다는 이유로 야당의 동의를 받기 어려울 수 있다. 우리 헌법은 개헌에 국회와 대통령의 발의를 거쳐 국회의원 ⅔의 동의, 국민투표 절차를 규정하고 있으므로, 현재의 국회의석 분포로 볼 때 야당의 동의를 받지 못하는 개헌은 성사되기 어렵다.

우리 헌법은 일반 법률보다 개정하기가 어려운 경성헌법이다. 그러므로 한 대통령 임기 안에 두 번의 개헌은 쉽지 않으며, 설사 가능하다 해도 짧은 시차를 두고 행하는 두 번째 개헌에서 권력구조를 개편하려 함으로써 앞서 행한 개정헌법을 또 크게 손본다는 것은 결코 지혜로운 일이 아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11월 6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권력구조 개편과 기본권 강화와 지방분권을 담은 개헌을 추진하도록 하고 이달 안에 개헌특위 자문위원회가 제출한 개헌안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조문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는데, 올바른 방향 설정이라고 생각된다. 국회를 중심으로 진지한 성찰과 검토를 통해 개헌을 추진하는 정치권의 분발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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