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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식 시인
"인천부사회사업협회(仁川府社會事業協會)에서는 부내 일본 내지인 각 가정에서 고용하는 하녀가 근일 격증함에 감하야 하녀학교라는 색다른 사업을 하게 되어 오는 8월 10일부터 개교하야 10월 9일까지 2개월 간에 국어, 산술은 물론 일본 내지인의 예의범절까지 가르쳐 졸업 후에는 직업까지 구해주기로 한다는데 학교는 부내 화정(花町) 인보관(隣保館)이며 자격은 13세부터 30세까지의 조선 부녀자로 일본 내지인 가정의 하녀를 지망하는 사람에 한한다고 한다."

 1937년 8월 5일자 동아일보 기사 내용이다. 하녀학교(下女學校)라는 해괴한 명칭에서 ‘아니, 이런 학교가 다 있었어?!’ 하는 탄식을 하게 된다. 사회사업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일본인 가정에서 부려먹을 조선인 하녀를 양성하는 이 ‘색다른 사업’은 일제의 조선인 멸시와 하대(下待) 사고방식의 오만함이 고스란히 드러난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1930년대라면 인천 개항 반세기를 지나는 시기로 저들은 이곳에서 있는 대로 조선의 고혈을 빨아대 살이 통통히 쪄 있던 때다. 그래서 아마 제 수족을 놀려 가사(家事)를 돌보는 것조차 숨이 찼는지 모른다. ‘부내 일본 내지인 각 가정에서 고용하는 하녀가 근일 격증함에’ 운운하는 것을 보면, 말 그대로 조선인 하녀를 두려는 일인 가정이 크게 늘어났던 모양이다. 이렇게 너도나도 조선인 하녀를 두고자 했으니 행정관서인 인천부의 사회사업협회에서 하녀학교 개설을 생각해 냈을 것이다.

 2개월 교육 기간 동안 ‘국어와 산술, 그리고 일본 내지인 예의범절’을 가르친다는 교육 내용에도 기가 찬다. 여기서 말하는 국어는 물론 일어다. 하녀가 간단한 경제 활동이라도 해야 할 터이니 산술 교육도 필요했을 것이다. 거기에 예의범절을 말하는 데는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섬나라인 주제에 스스로를 내지인(內地人)이라 칭하는 이 억지, 이 콤플렉스에 대고 예의범절이라니…. 그렇다면 대륙에 연해 있는 조선 사람의 가정이 바깥, 외지인 가정이라는 말인가.

 하녀가 되는 자격은 ‘13세부터 30세까지의 조선 부녀자로 일본 내지인 가정의 하녀를 지망하는 사람에 한한다’라는 식의 문구에도 문제가 있다. 13세라면 아직 미성년 소녀이다. 하녀 교육을 시킬 것이 아니라 정식 중등고육을 받게 함으로써 온전히 성장토록 배려해야 할 나이라는 점이다.

 또 ‘스스로 하녀를 지망하는 사람에 한해서’ 교육과 직업을 알선한다는 말도 지극히 민주주의적 절차를 밟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저의(底意)를 은폐한 미끼일 뿐이다. 이 무렵 하녀 일조차도 귀한 ‘직업’으로 여길 만큼 피폐한 조선인 가정이 얼마나 많았던가. 조선인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하녀학교에 입학하는 듯한 논리지만, 이면을 살펴보면 수다식구의 목구멍 풀칠을 위해 하는 수 없이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2개월에 걸친 인보관(참고로 인보관은 1930년대, 조선총독부와 직간접적으로 관계되어 경향 각지에 설립된 빈민층 구제 기관이었다고 하는데 인천에는 화정, 곧 중구 신흥동 2가 옛 인천지방법원 자리에 있었다.)에서의 하녀학교 교육은 예정대로 10월 9일에 ‘무사히’ 종료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동아일보는 이날 다시 "인천부 사회과의 이채 있는 한 계획으로 전선에 유례없는 하녀학교"가 마침내 "양호한 성적으로 폐강"되어 "벌써부터 각 일본 내지인 가정에서 주문이 쇄도한다"며 무슨 대단한 쾌거나 보도하듯 고무된 억양의 기사를 내놓는다.

 마치 무슨 물건처럼 "주문이 쇄도한다"는 하녀학교 졸업생 중에 실제 13살짜리 소녀가 몇 명이나 끼어 있었는지 기사에 나와 있지는 않다. 그러나 전체 졸업자가 54명이나 되었다는 사실에는 또 한 번 입맛이 씁쓸해진다. 이 무렵 일본인 가구가 대략 3천여 가구임에 비하면 큰 숫자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기왕에 하녀가 된 조선인 여성의 수까지 합친다면 적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인 어린 소녀부터 서른 살 여성들까지 길들여 부려먹으려는 의도로 개설한 이 하녀학교가 오래 지속되었다는 기록이 없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겠으나, 분명한 것은 이 하녀학교야말로 인천에 있었던, 또 다른 한국 최초, 그리고 유일의 치욕스러운 흔적이었음에 틀림이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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