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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을 통해 냉소와 환멸을 드러내는 블랙코미디는 모순된 상황을 통해 해당 사회를 짙게 풍자한다. 흑백 영화 시대에 대표적인 블랙코미디 장르 감독이자 배우를 꼽으라면 단연 찰리 채플린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삶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채플린의 후기 작품에서는 산업 사회에서 소외되는 인간군상을 유머와 더불어 폐부를 찌르는 날 선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영화 ‘브라질’은 독특한 세계관을 구축한 테리 길리엄 감독의 초기작으로, 작품의 외부적으로도 넌센스적 상황이 공존하는 블랙코미디 영화다. 국내에서는 내용과 전혀 관계없는 ‘여인의 음모’라는 타이틀로 소개되는가 하면, 미국 개봉 당시 어두운 결말에 부담을 느낀 배급사의 자의적 편집으로 결말이 뒤바뀌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우여곡절이 있었음에도 감독의 의지대로 완성된 오리지널 작품은 80년대를 대표하는 SF수작으로 평가 받고 있으며, 3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유의미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명확한 시대를 알 수 없는 가까운 미래사회는 시스템의 철저한 운용과 통제 아래 정렬된 듯 보인다. 그러나 시작한지 채 5분도 되지 않아 영화는 그런 시스템 사회를 비웃는다. 파리 한 마리가 인쇄기에 잘 못 들어가는 바람에 체제 반동분자 이름이 ‘터틀’에서 ‘버틀’로 바뀐다. 이후 이를 알아차린 관료사회는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억울하게 체포된 ‘버틀’을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은 문제 없이 작동하며 자신들 또한 실수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버틀’을 살해한다. 나아가 그가 체포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색출해 존재 자체를 삭제해 버린다.

 오류투성이인 최첨단 시스템으로 아침을 여는 기록부 직원 샘은 현재 삶에 만족하고 있다. 주어진 일만 하면 되는 일상이 그에게는 더없이 편안하다. 누구보다 시스템에 순응적이던 샘은 한 여성을 만나 달라지게 된다. ‘버틀 사건’에 의문을 품은 여인을 구하기 위해 그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기록과 정보를 바로잡으려 하지만 그의 모든 노력들은 오히려 체제 전복의 신호로 읽히고, 그 또한 제거 대상 순위에 오르게 된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모티브로 디스토피아적 미래관을 다룬 작품 ‘브라질’은 진지한 분위기의 원작과는 달리 충돌에서 발생하는 희비극에 집중하고 있다. 영화의 제목의 ‘브라질’ 또한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는데, 철과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잿빛 이미지 위에 브라질 풍의 밝고 경쾌한 음악이 시종일관 함께하며 상충된 상황을 강화한다. 과학과 이성, 합리성으로 구축된 시스템과 이를 지탱해주는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이 작품은 불완전하지만 오히려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인간의 감정과 정신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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