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권홍.jpg
▲ 류권홍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영흥도를 처음 다녀온 것은 벌써 몇 해 전, 영흥화력 7, 8호기 석탄 발전 증설에 대한 토론회에 반대 논리로 발제를 하러 갔을 때였다. 영흥도를 가면서 든 느낌은 영흥도와 강화도는 인천임에도 불구하고 경기도를 통과해서 돌고 돌아 갈 수밖에 없고, 길마저 좁은 것은 물론 대중교통을 통한 접근은 험난한 고통의 길이라는 것이었다. 주말, 공휴일 오후의 교통혼잡 문제는 이야기하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우여곡절 끝에 7, 8호기 석탄발전소 증설은 추진되지 않았다. 반대 주장의 핵심은 2011년 9·15 정전의 여파로 너무 많은 발전기들이 추가 증설됐고, 우리나라 경제가 그리 좋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인구가 감소할 것이기 때문에 대규모 석탄발전을 증설할 타당성이 낮다는 것과 석탄화력의 환경 문제였다. 최근 기술의 발달로 석탄화력의 환경 문제가 많이 해소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마치 석탄화력이 미세먼지의 주범인 것처럼 몰고 가는 것도 옳지 않다. 하지만, 석탄화력은 최대 이산화탄소 배출원이며, 주변 지역에 석탄 가루, 타고 남은 재, 온배수를 포함한 다양한 기타 유해 물질들을 배출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얼마 전, 영흥도에서 영흥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토론회를 진행하던 도중 환경 피해 주민의 생생한 증언을 듣게 되었다. 소장골 주민들로부터 배추, 과일 등에 석탄가루가 묻어 있고 이로 인해 농작물이 죽어가고 있다는 호소를 듣게 됐다. 소장골은 영흥화력 바로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영흥화력의 저탄장이 야적 형태라서 석탄가루들이 비산돼 피해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이런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야적된 석탄가루나 재 등이 인근지역에 비산될 수 있다는 것은 발전소의 설립 초기에 누구나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환경법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가 사전 예방의 원칙이다. 어떤 환경문제가 발생될 것이 합리적으로 예측된다면 사전에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규모 석탄 야적장을 설치하고, 재를 배출하는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인근 지역에 석탄가루 등의 물질들이 날아갈 가능성은 누구나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남동발전이 이런 문제에 대한 사전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다. 친환경을 강조하고 자랑하는 공기업이 무책임하다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게 됐다. 우리나라의 환경영향 평가제도 자체의 맹점이기도 하다. 이 정도의 결과는 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서 감지되고 대책을 수립하도록 했어야 하는데, 사업자가 작성하는 환경영향평가, 환경보다는 개발 위주의 평가 관행이 유지되다 보니 정작 환경영향 평가제도의 근본이 망각되는 결과가 발생되고 있다.

 우리나라 국내 환경법에 수용된 것은 아니지만,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중요한 원칙으로 사전 배려의 원칙이 있다. 비록 현재는 환경 피해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과학적 인과 관계가 증명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일정한 정도의 위험이 있다면 국가가 해당 위험을 해소 또는 배제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사전배려의 원칙이 강조되면 경제에 너무 큰 어려움이 발생하고, 아직까지는 과학적 인과관계의 증명 없이 민사, 형사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주류이기 때문에 구속력이 없는 주장에 불과하지만 앞으로는 사전배려 원칙의 지위는 정치적으로, 법적으로 상당히 높이질 것이다. 이 사안에서 인과관계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아 보인다. 화력발전소가 존재하고 농작물에 석탄가루가 앉아 있다. 피해는 분명하다. 어떤 소비자가 석탄을 뒤집어쓰고 자란 농작물을 사겠는가. 영흥지역 전체의 농업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런데 주민들이 입은 피해의 원인자인 남동발전은 배추 밭 석탄분진은 인정하지만 감나무 등 유실수는 병충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앞뒤 맞지 않는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같은 지역의 배추 밭에는 석탄이 날아가고 감나무에는 날아가지 않을 수 있을까. GPS가 달린 석탄가루도 아니고.

 영흥화력은 가해자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제3자가 책임 있게 이 문제에 대해 검증하고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피해 주민을 중심으로 환경부, 산업부, 인천시, 옹진군 그리고 지역 시민단체 등이 공동으로 참여해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석탄화력이 있는 전국의 모든 지역에서 사전 예방, 사전배려는 물론, 원인자 책임의 원칙이 적용되는 올바른 사회가 되기 바란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