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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미영 인천시 부평구청장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여수에서 열린 ‘지방자치의 날’ 개막식에 참석, 기념사를 통해 "자치와 분권이야말로 국민의 명령이고 시대정신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하며 "강력한 지방분권시대, 새로운 지방분권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를 위해 ‘지방분권 개헌’을 추진하며 그 개헌 내용에는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개칭해 명문화"하는 한편 "자치입법권·자치행정권·자치재정권·자치복지권의 4대 지방 자치권을 헌법화하겠다"고 덧붙였다. 필자는 인천 달동네에서 시험지를 배달하는 아줌마, 공부방 선생으로 살다가 1991년 첫 지방자치선거가 있던 해에 "못 사는 동네라고 행정기관이 소홀히 하는 문제들을 해결해 달라"는 주민들에게 등을 떠밀려 구의원에 출마,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시의원, 국회의원을 거쳐 전국에 몇 안 되는 재선 여성 구청장으로 활동, 풀뿌리 민주주의 현장인 지역을 지키면서 우리 자치제도가 갖고 있는 모순을 몸으로 겪고 또 개선하려 노력해왔다. 지방자치가 시행된 지 25년이 넘었지만 보수정권 10년을 거치면서는 중앙집권적 관료시스템이 다시 강화돼 자치가 오히려 퇴보하는 현상도 직접 현장에서 확인했다.

 국회는 실질적 지방자치와 무관하게 법률을 제정하고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에게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윽박지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지방공무원 수 통제, 자치 과세권 제약 등으로 지방자치단체는 자율권에 기초한 창의적 또는 맞춤형 시책을 전혀 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최근 인천시마저 시 자체 신규 복지사업을 일방적으로 계획 발표하면서 그 비용 부담을 재정자립도 20% 안팎의 기초자치단체에 떠넘기니, 권한과 재정이 우월한 형님(시청) 눈치 봐야 하는 가난한 아우(구청)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 유감스러운 상황이다. 이런 현실에서 "주민이 직접 생활 문제에 참여하고 해결하는 자치분권으로 국민의 삶도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문 대통령의 말씀은 그야말로 촛불민심에 의해 탄생한 대통령임을 확인해주는 것이며, 26년 전 첫 지방자치선거에 주민들과 쓰레기 수거 문제, 가로등 및 공중전화 설치, 상하수도 정비 등을 해결해 나가던 37세 여성 빈민운동가인 필자를 구의원으로 내보내 지역 문제를 풀려했던 달동네 아주머니들의 ‘선견지명’과 맥을 같이한다.

 문 대통령의 이번 발표는 지방자치를 되살린 김대중 대통령, 지방자치를 키운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주민이 진정 주인이 되는’ 참된 지방자치의 초석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하지만 아직도 상당수 지역 정치인들이 예전 정치 관행처럼 ‘중앙정치 바라기’가 돼 지역 풀뿌리 현장보다 중앙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 대통령과 정부가 자치권을 부여해도 그들이 제대로 행사할 능력이 있을까 염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행자부 등 중앙 고위직(국가직)공무원들은 지방직 공무원이나 지방단체장 등 선출직 공무원 및 주민들의 지방자치 능력을 낮게 평가하면서 분권이양에 소극적이라는데 말이다. 그런 점에서 지방선거 출마자들은 무엇보다 주민 삶의 현장에 뿌리박고 지방자치 필요성을 절감하며 이를 실현시키려는 강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똑똑해도 중앙에서 공무원 생활을 오래 했거나 국회 등 중앙 정치에 더 익숙해져 지방자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는 지금 분권의 시대에 걸맞지 않다. 내년 지방선거 출마자를 비롯한 지역 정치인들과 주민들이 "강력한 지방분권 공화국을 국정 목표로 삼고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한 대통령의 그 시행 의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대통령의 강력한 ‘자치 로드맵’은 현장에 착근하지 못하는 불행을 맞게 된다. 그래서 지금 중요한 것은 유권자들 스스로 자치와 분권 의식으로 무장하고 나아가 지방선거에 나설 후보들이 제대로 지방정치에 훈련이 돼 있고, 지방자치를 실천할 의지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깨어 있는 시민들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 하지 않았던가. 부평구가 ‘자치분권대학 부평캠퍼스’를 설치, 10월부터 11월까지 두 달간 왜 주민자치가 필요한 지를 알리는 것은 바로 지방자치에 대한 주민들의 지식과 경험이 앞으로 확대 시행될 지방자치의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는 중앙정부가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조직되고 훈련된 시민의 힘으로 쟁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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