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6월 29일 월요일, 인천지역 곳곳에서 비명과 울분이 터져 나왔다.

 경기은행 직원들은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었고, 은행 고객들은 일생 동안 모은 돈을 잃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의 쓰나미가 지역은행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이날 경기은행을 포함한 은행 5곳을 퇴출시키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자기자본(BIS) 비율이 8% 미만인 곳으로 금융당국은 해당 은행을 부실은행으로 간주했다. 혼란이 휘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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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지역은행 터에 시티은행 등 다른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정부는 은행이 퇴출되더라도 업무는 정상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은행 직원들은 보란 듯이 저항했다. 퇴출 발표 전날인 28일 직원들은 중앙전산시스템의 전산코드를 지워버렸고, 다음날 출근을 거부했다. 인수은행인 한미은행(현 한국씨티은행)의 인수팀이 이날 새벽 경찰 병력과 함께 경기은행 본점에 도착했으나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아 인수작업을 추진하지 못했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고객들에게 돌아갔다. 고객들은 ‘내 돈을 돌려 달라’며 아우성 쳤다. 한미은행으로 몰려들었고, 은행 창구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고객 중에는 책상 위로 올라가 거세게 항의하는 이도 있었다.

 그렇게 경기은행의 시대는 저물어갔다. 경기은행은 1969년 12월 인천을 연고로 한 ㈜인천은행으로 시작했다. 1972년 6월 영업구역을 경기도로 확대하면서 ㈜경기은행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출발은 좋았다. 1974년 10월 ‘제11회 저축의 날’ 행사에서 최우수 저축기관으로 선정됐고, 1979년 7월 총예수금이 1천억 원을 돌파했다. 1985년 12월에는 총수신이 5천억 원을, 1988년 8월에는 1조 원을 넘어섰다. 1991년 11월에는 미국 뉴욕사무소를 열었고, 1992년 1월 중구 사동에서 남동구 구월동으로 본점을 이전했다. 1993년 8월에는 ㈜신경기상호신용금고를 인수했다. 이후 1997년 8월 총수신이 6조 원을 돌파했다.

 경기은행 퇴출 파장은 일파만파로 퍼졌다.

 먼저 정치권이다. 지역 인사들이 부실기업에 대출해 주도록 압력을 행사했다거나 퇴출을 무마하기 위해 로비를 벌였다는 식의 소문이 퍼져 나갔다. ‘서이석 리스트’가 대표적이다. 서이석 전 경기은행장은 법정에서 서정화(국민회의·인천 중동) 전 의원으로부터 부실기업인 ㈜일신에 대출해 주라는 압력을 받고 대출해 줬다고 주장한 바 있다.

 여기에 지역 시민단체인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는 경기은행 부당대출 압력 의혹을 받고 있는 최기선 전 인천시장과 서 의원에 대한 고발장을 인천지방검찰청에 접수했다. 최 전 시장과 손석태(전 경기은행 노조위원장) 전 인천시의회 의원은 경기은행 퇴출 직전 서 전 행장으로부터 2천만 원과 3천만 원을 받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각각 1천만 원 벌금형과 집행유예를 받았다.

경제계도 가위 눌렸다. 경기은행 퇴출은 곧바로 중소기업의 목줄을 옥죘다. 당시 경기은행과 거래 중인 인천·경기지역 중소기업은 2만3천여 개에 달했다. 이들 중소기업에 지원된 대출금은 1997년 3조 원으로 전체 대출금 4조 원의 70%를 넘게 차지한 것으로 분석됐다. 경기은행이 옹골지게 지역 중소기업의 자금줄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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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와 군·구의 업무도 마비됐다. 경기은행은 이들 기관의 공공자금을 예치·관리하고 있는 시금고였다. 이들 기관이 경기은행에 예치한 저축성 및 공공예금은 모두 6천300여억 원에 달했다. 특히 인천시는 경기은행의 특정금전신탁에 예치됐던 기금과 지하철 건설 운영자금 등 480억 원 가운데 일부가 회수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역 금융권도 붕괴됐다. 경기은행 설립과 함께 사금융 활성화 정책으로 1970년대 초 잇따라 설립된 상호신용금고가 줄줄이 퇴출됐다. 인천은 수도 서울이 인접하고 있어 지역금융회사의 발전이 타 지역에 비해 비교적 더뎠지만 경기은행 이후 1970년부터 1972년까지 지역토착금융기관이 줄이어 문을 열었다. 지역에 기반을 둔 한국·안흥·흥성·대신·정우·대한상호신용금고 등이었다. 이들은 서민과 중소기업의 자금 공급처 역할을 담당하며 지역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서민금융기관이었지만 외환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2000년에 모두 퇴출됐다. 에이스저축은행도 정리됐다.

 금융위원회는 2011년 9월 18일 에이스저축은행을 비롯한 7개 저축은행을 부실금융기관으로 결정해 6개월간 영업정지 조치를 내렸다. 남동구 구월동에 위치한 에이스저축은행 본점 앞에는 불안한 고객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영업정지 나흘 뒤부터 가지급금 지급이 시작됐는데, 고객들은 전날부터 밤을 새워가며 줄을 섰다. 에이스저축은행의 상황이 가장 심각했기 때문이다.

 이 저축은행은 2010년 말 기준 BIS 비율이 8.2%라고 밝혔으나 금감원 경영진단 결과, 마이너스(-) 51.1%로 추락했다. 단 몇 개월 만에 BIS 비율이 60%p 가까이 떨어졌다. 검찰은 저축은행 비리 수사에 돌입했고, 결말은 비극으로 끝났다.

 김학헌 전 에이스저축은행 회장은 2012년 1월 비리와 관련해 검찰 소환 통보를 받은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고양종합터미널 건설사업과 관련해 시행사에 약 6천900억 원을 불법대출해 준 혐의(상호저축은행법 위반)를 받고 있었다.

 저축은행 비리 수사로 은행 관계자가 자살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2011년 9월 제일2상호저축은행 정구행 행장과 같은 해 11월 토마토2저축은행 차모 상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역을 뒤덮은 잔인한 계절은 계속됐고, 지역금융권은 뿌리째 뽑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 인천 지역은행 문 다시 열릴까?

 ‘인천에 지역은행이 다시 열릴 수 있을까?’ 경기은행 퇴출 이후 19년 동안 인천에는 지역은행이 없다. 대신 인천신용보증재단이 그 역할을 일부 담당하고 있다. 이곳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신용이나 사업성을 평가해 신용보증서를 발급하고 이 보증서로 자금을 대출받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과 같은 금융기관이 아니다 보니 역할에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2017년 10월 20일 현재 신용보증공급은 2만3천736건에 5천194억여 원이다.

 그동안 인천은 지역은행 설립을 부르짖어왔다. 최근 들어서는 인천시의정회가 목소리를 높였다. 전 인천시의원으로 구성된 인천시의정회는 지역경제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지역은행이 필요하다고 봤다. 1조 원 이상의 자본 형성과 2천500여 명의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2012년 18대 대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인천시당은 인천은행 설립을 대선공약으로 발표했다. 이윤성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인천 남동갑 국회의원 예비후보는 2016년 20대 총선에서 인천은행 설립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역은행이 필요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지역 자금의 외부 유출 방지와 지역경제 활성화다. 지역에서 조성된 자금이 외부로 빠져 나가는 것을 막고 자금난에 허덕이는 지역 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위한 지원을 늘려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것이다. 현재 인천의 역외소비율은 전국에서 가장 높다. 역외소비율은 시민들이 타 지역에서 소비하는 비율을 말한다. 인천시에 따르면 인천의 2014년 역외소비율(신용카드 기준)은 52.8%로 세종시를 제외한 전국 16개 시·도 중 가장 높다. 반면, 타 지역 주민이 인천에서 소비하는 비율인 소비유입률은 25.3%에 그친다.

 대전(32.3%), 광주(28.4%)보다도 낮다. 인천에 일자리가 많지 않아 서다. 때문에 인천시민의 역외 통근비율은 유입 통근비율보다 높다. 여기에 인천에서 타 지역 직장으로 가는 비율은 21.3%로 서울(11.4%), 경기(9.9%)보다 높다. 지역은행이 있어야 중소기업 대상 대출 규모도 커진다. 한국은행의 중소기업 대출비율제도를 보면 지역은행은 원화 금융자금 대출금 증가액의 60% 이상을 중소기업에 지원하도록 하고 있지만 시중은행의 경우 45% 이상으로 지역은행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처럼 지역은행이 필요한 이유는 많지만 설립이 녹록치 않다. 우선 지역은행 설립에 필요한 최저자본금 250억 원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현 금융시장은 시중은행 대형화 추세에 있어 지역은행이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기가 어려운 구조다. 타 시·도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경기도민은행 설립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백지화됐다. 오프라인 지점 없이 인터넷 기반의 은행을 설립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지역은행과 함께 지역화폐도 뜨거운 관심사다. 모두 자금 유출을 막기 위한 취지다. 강원도는 올해 초부터 지역 내 자금이 순환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지역재투자법’, ‘지역은행설립법’과 함께 ‘지역화폐법’ 등 지역경제 3법의 연내 입법화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지역화폐법’은 지역화폐의 안정적인 운영과 지역자금의 역내 순환을 위해 제도적 지원책을 마련하는 법안이다. 해당 법안에는 지역상품권의 반복·순환 사용과 예·송금, 공과금 및 세금 납부가 가능하도록 전자화폐 기능을 추가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는 지역화폐 성격의 강원상품권을 발행해 유통시키고 있으나 논란이 일고 있다. 당초 강원도는 강원상품권이 유통되면 지역 내 통화량이 증가해 소비 촉진과 지역기업 및 소상공인 등의 매출 증대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기존 온누리상품권과의 차별화가 뚜렷하지 않고 가맹점 확보 부족에 주민들 호응이 뒤따르지 않아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 인천도 지역화폐 결합형 ‘Incheoner 애인(愛仁) 카드’ 발행을 추진했다. 당초 시는 143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내년부터 애인카드를 개발해 보급할 계획이었다. 지역사랑상품권 기능이 통합된 지역형 카드로 역외 소비를 줄이고 인천소상공인들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사업이 보류됐다. 사업 추진을 앞두고 실시한 재정투자심사위원회에서 ‘재검토’ 의견을 내놨다. 법·조례 등 제반규정이 갖춰져 있지 않고 타당성 용역이 미흡하며 시민인식이 갖춰져 있지 않은 점이 이유였다. 여기에 사업비 부담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단말시스템 구축에 60억 원 상당이 들어가는 데다 전용단말기 보급비용만 50억 원 가량이다. 단말기의 경우 지역에 총 15만 대를 보급할 예정으로, 사업 시작 후 4년 동안 매년 50억 원이 추가로 들어간다.

 최근 인천YMCA에서 열린 ‘지역 영세자영업자·소상공인 살리기 연속 토론회’에 참석한 김남영 연희검암상인협동조합 사무국장은 "지역화폐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관의 일방적인 지원이나 공급자인 상인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상인과 소비자인 지역 주민이 공동 주체가 돼야 한다"며 "지역화폐가 올바른 방향으로 사용되고 활용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민 스스로 ‘착한 소비를 하면 우리 동네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자부심과 애향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경기은행 연혁
 
1969. 12 : ㈜인천은행으로 창립(자본금 1억5천만 원)
1972. 06 : ㈜경기은행으로 상호 변경(영업구역을 경기도로 확대)
1979. 07 : 총예수금 1천억 원 돌파
1985. 12 : 총수신 5천억 원 돌파
1988. 05 : 자본금 1천억 원으로 증자
1988. 08 : 총수신 1조 원 돌파
1989. 07 : 자본금 1천502억 원으로 증자
1991. 11 : 미국 뉴욕사무소 개소
1992. 01 : 인천 중구 사동에서 인천 남동구 구월동으로 본점 신축 이전
1993. 08 : ㈜신경기상호신용금고 인수
1994. 12 : 자본금 2천2억 원으로 증자
1996. 07 : ㈜경은경제연구소 설립
1997. 08 : 총수신 6조 원 돌파
1998. 02 : 경영 개선 권고(금융감독위원회)
1998. 04 : 경영 정상화 계획 제출
1998. 06 : 금융감독위원회 계약이전 명령에 의거 퇴출
1998. 09 : 은행업 인가 취소(재정경제부)
1998. 10 : 파산 선고(인천지방법원)

조현경 기자 cho@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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