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은행 출신이자, 현재 ㈜나눔과 기쁨 효도시락 대표로 일하고 있는 김영복 씨
▲ 경기은행 출신이자, 현재 ㈜나눔과 기쁨 효도시락 대표로 일하고 있는 김영복 씨
1998년 10월 인수은행인 한미은행에 대출 장부를 모두 넘기는 순간 그는 왈칵 눈물을 쏟았다. 지키지 못한 자의 회한이었다. 그래서 그의 스무 해는 삭지 않는 뉘우침의 삶이었다. 20년 전 김영복(66) 씨는 경기은행 본점 여신부 차장이었다. 그 전 19년을 경기은행 사람으로 살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행정고시를 준비하던 중 생활비라도 마련할 요량으로 1979년 시험을 본 게 덜컥 수석으로 붙었다.

김 전 차장은 은행 내에서도 전체 직원의 10%에 불과했던 기획 요원이었다. 본점 기획부 대리, 서무부 차장, 자금부 차장을 거쳐 여신부 총괄차장까지 핵심 부서를 두루 거쳤다.

하지만 나이 마흔일곱에 첫 직장이었던 경기은행을 떠나야만 했다. "2천 명이 넘는 직원이 한 순간에 해직자이자 퇴직자가 되고 말았지. 다른 은행에서도 오라고 했지만 난 안 갔어. 은행이 싫더라고. 정이 떨어지더라고." 그는 몸서리를 쳤다. 직장을 잃은 아픔보다 고객의 돈을 지키지 못한 고통이 컸다. 그럴 만도 했다. IMF 외환위기 직전 그와 같은 경력의 퇴직자에게 위로금을 포함해 4억3천만 원이 돌아갔다. 기업에 목돈을 대출해 주면서 차를 바꾼 간부들도 더러 있었다.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던 중소기업인들과 콩나물 값을 아껴가며 저축했던 고객들을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다는 죄의식이 그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의 안타까운 마음을 알아챈 것일까. 직장을 버리고 떠난 여행 중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으로부터 한 통화의 전화가 걸려왔다.

중소기업인을 위한 컨설팅을 해달라고. 제2의 인생이 시작됐다. 중소기업청 내 경영기술지원단 상담실장으로 일하게 됐다. 당시에는 이름도 생소한 ‘소상공인’ 관련 지원센터를 설립하는 총괄 업무를 맡았다. "소상공인지원센터의 자리가 공교롭게도 옛 경기은행 구월동 사옥이었어. 한미은행 15층이었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빼앗긴 건물을 내가 다시 찾았구나."

그는 은행원으로 일할 때도, 중소기업청 소상공인지원센터장과 경제통상진흥원 센터장으로 일할 때도 지역경제의 근간이 되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을 위했다고 했다. 지역은행을 사수하지 못한 은행원의 몸부림이었다. "그 때 경기은행이 퇴출되지 않았으면 지금 어찌 됐을까?" 그는 간혹 미련 섞인 생각을 해 본다.

"경기은행이 퇴출되지 않았다면 내 고장 인천은 지금보다 잘사는 도시가 됐겠지. 돈이 인천 시내에서만 도니까. 시중은행은 돈이 전부 서울로 빠져 나가잖아. 그래서 인천이 배고픈 거야. 힘든거야."

그는 사회적기업 ‘㈜나눔과 기쁨 효도시락’ 대표로 6년째 일하고 있다. 홀몸노인과 같은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1천 개의 도시락을 무료로 전달하고 있다.

"20년이 됐다 지만 그것도 모르고 정신 없이 살았어. 지역 상권을 분석하고, ‘남의 집 살이’ 하던 기업에 제 집 마련을 돕고 이제는 무료 반찬도 지원하고…. 하루도 못 쉬었지. 경기은행 얘기는 이제 꺼내지 말어. 아프니까. 상처만 더 커지니까." <관련기사 3면>
조현경 기자 cho@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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