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GM) 부평공장이 20년 전 대우자동차 시절의 궤적을 쫓고 있는 모양새다. 진작 고리를 끊지 못한 채 부실을 부실로 막아온 허술함이 부르고 있는 ‘화(禍)’의 전조다.

한국지엠은 2014년부터 적자의 늪에 빠진 상태다. 지난해 영업손실이 5천312억 원을 기록했다. 최근 3년간 누적 손실액은 1조2천741억 원에 달한다. 한국지엠의 지난달 판매량은 7천672대이다. 국내 자동차 업계 4위인 쌍용차와 불과 258대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최근에는 국내 완성차 생산물량마저 급격히 줄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지엠은 판매 부진을 이유로 올해 12월 31일부터 올란도와 캡티바 생산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3년 뒤 2020년까지 근로자 3천 명이 순차적으로 정년퇴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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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시 부평구 한국지엠 공장 전경
하지만 한국지엠은 아직 신규 인력 채용계획이 없다. 글로벌 GM은 전 세계적으로 사업구조 조정을 하고 있다. ‘한국지엠 철수설’이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다.

 2002년 대우차 인수 당시 산업은행이 보유한 한국지엠 지분 매각과 관련한 특별결의거부권(비토권)은 15년이 지난 올해 10월 16일 상실됐다.

 지금 한국지엠의 모습은 20년 전과 비슷하다. 당시 IMF 외환위기로 대우자동차가 이름을 바꿀 당시 모습과 닮아가고 있다. 그 모양은 한국지엠 부평공장의 역사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1962년 8월 부평에는 최초의 현대적 자동차 생산공장이 세워진다. 재일 동포인 박노정 야쓰다(安田) 상사 대표가 자본금 1억 원을 들여 만든 ‘새나라 자동차’다. 박 대표는 이듬해인 1963년 5월 아시아 영화제를 핑계로 생산 차량을 일반택시로 용도를 변경한 뒤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공장 터를 사고 부품을 일본서 들여오는 이 과정에서 당시 중앙정보국 고위층이 정부 관계자에게 압력을 넣고 정보비조로 70여만 환(10환은 1원)을 건네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후 새나라 자동차의 회사경영권은 1965년 7월 대우자동차의 전신인 ‘신진공업사’로 넘어갔다. 신진은 1966년 1월 회사 이름을 신진자동차공업㈜로 바꾼다. 일본 도요타 자동차에서 들여온 부품을 조립해 코로나와 크라운 승용차를 선보였다. 1968년 신진은 부평에 165만㎡ 규모의 종합 자동차 제조공장을 세워 연간 1만5천 대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인천은 국내 자동차산업의 중심지로 떠오른다.

 1972년 신진은 기술 제휴처인 도요타가 철수하자, GM과 185억 원을 공동출자해 ‘제너럴모터스코리아자동차주식회사(GM코리아)’로 회사명을 바꾼다. GM코리아의 설립은 당시 김우중 대우실업 대표이사 사장이 주도했다. GM코리아는 1972년 시보레1700과 레코드 1900 등 승용차를 생산했다. 이듬해에는 고속 화물차와 대형 버스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1975년까지 가솔린 엔진공장을 세우고 중장비 차량까지 만들게 됐다.

 GM코리아는 1976년 ‘새한자동차주식회사’로 이름을 바꾸고 이듬해 동양 최대 규모의 서울정비센터를 준공했다. 이후 1978년 산업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신진의 지분을 대우실업이 인수하면서 경영에 참여하게 됐다. 당시 김우중 사장은 국내에서 완성차를 만들어 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GM은 새한자동차를 자사 자동차의 하청 생산기지로 여기는 경영방침을 고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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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시 부평구 한국지엠 공장 일원에서 노조원들이 한국지엠 측의 산업은행지분매각 논의에 반대하는 ‘30만 일자리 지키기 결의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가두행진을 하고 있다. 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김 사장과 GM의 대립 끝에 1983년 1월 대우실업은 GM으로부터 경영권을 넘겨받고 ‘대우자동차주식회사’를 탄생시켰다. 대우자동차㈜는 1992년 10월 GM과 합작관계까지 청산하며 100% 대우그룹 출자회사가 된다. 대우차는 1993년 ‘세계 경영’ 선언 이후 대우와 대우중공업의 후원으로 동구권과 아시아를 중심으로 완성차 조립 공장을 짓는다. 1997년에는 독자 모델인 라노스와 누비라, 레간자 등 3개 모델을 동시 개발하면서 국내 자동차 시장에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IMF 외환위기 전 대우차가 인천지역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고용기준으로 13.6%, 생산기준 9.2%였다. 부평공장은 종업원 수만 1만1천111명에 달했다.

 1차·2차 협력업체는 모두 286개 사(1만6천924명)에 이르렀다. 대우자동차의 겉은 화려했지만 과도한 무이자 할부판매와 차입경영으로 속은 문드러지고 있었다. 대우차의 곪은 속은 대우그룹의 운명을 앞당겼다.

 대우그룹은 1997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경제 위기를 외환유동성 부족에서 비롯된 일시적인 현상으로 생각했다. 때문에 구조조정을 지연하고 차입을 늘려 넘기면 된다는 ‘오판(誤判)’을 했다. 대우차는 1997년 12월 쌍용자동차 주식 53.5%를 인수하면서 쌍용차의 부채 3조4천억 원 중 2조 원을 무리하게 떠안았다.

 게다가 대우는 외환위기 극복으로 수출을 무리하게 늘리면서 자금 부담이 커졌다. 자금 부족을 자산 매각 등으로 자구책을 마련하지 않고 회사채 기업어음(CP) 등 차입 확대로 대응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됐다. 1997년 말 대우의 자산총액은 LG와 비슷한 53조 원이었다. 1998년 말 LG는 자산총액이 50조 원으로 줄어든 반면, 대우는 오히려 78조 원으로 늘었다. 경영위기에 처한 대우그룹이 회사채와 CP 발행으로 버텨왔다는 방증이다.

 대우그룹이 붕괴하면서 대우자동차를 비롯해 대우중공업, 대우통신, 대우전자 등 인천 소재 대우 계열사가 잇따라 구조조정과 회사 정리 절차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협력 중소기업들도 줄줄이 도산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대우자동차의 부채 규모는 1998년 말 11조7천906억 원이었지만 구조조정이 늦어지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대우차의 부채는 1999년 6월 말 15조5천602억 원, 8월 말에는 18조6천383억 원까지 급증했다. 2000년 11월 18일 대우자동차가 끝내 부도를 맞으며 인천지역 경제는 쑥대밭이 됐다.

 인천은 인천상공회의소와 인천시를 주축으로 2000년 5월 인천지역 자동차산업 살리기 범시민 협의회까지 만들어 ‘인천 자동차산업 살리기 100만인 서명운동’을 펼쳤지만 대우차의 부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우차가 무너지자, 1·2차 협력업체 11개가 곧바로 연쇄도산했다. 1만여 개에 달하는 협력업체들도 결제자금이 묶여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다. 이때 지역경제에 미친 피해액만 3천억 원으로 추산된다. 대우차 협력업체와 관련 산업 근로자와 가족 등 20만 명은 생계를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당시 부평공장 주변의 식당과 학원가는 ‘초토화’라는 말이 과장되지 않을 만큼 피해가 컸다. 노사는 경영혁신위원회를 열고 인원 감축문제를 협의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해 2001년 2월 1천750명의 생산직 근로자가 해고됐다. 과거 사업 파트너였던 GM은 2002년 대우차의 승용차 부문만 인수한 뒤 2003년 4월 지엠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로 회사명을 바꿨다. 나머지 버스는 대우버스㈜로 이관됐고, 상용차 부분은 타타대우상용차㈜로, 부평공장은 대우인천자동차㈜로 각각 쪼개졌다.

 GM대우는 2005년 해고자 전원 복직을 결정하고 대우인천자동차를 인수합병했다. 이듬해인 2006년에는 거의 모든 해고자가 일터로 돌아왔다. GM대우는 2011년 국내에서 판매하는 차량 브랜드를 ‘쉐보레’로 변경하기로 결정한 뒤 회사명도 ‘한국지엠’으로 바꿨다.

# 대우자동차판매부지의 저주

 인천시 연수구 동춘동 911 옛 대우자동차판매㈜ 터 92만6천952㎡는 매립된 지 수 십 년째 저주받은 듯 그대로다. 그 터 위의 그림들은 늘 그럴듯했다. 누군가는 국제 규모의 해양공원을 만들겠다고 떠들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세계 굴지의 영화사를 끌어들여 무비파크와 함께 100층이 넘는 초고층 빌딩을 짓겠다고 떠벌렸다. 최근에는 국내 최고 수준의 유원지도 만들겠다고 자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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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도에 위치한 옛 대우자동차판매 부지 전경.
하지만 현재까지도 이 땅은 먼지 가득한 중고차단지와 나대지로 남아 있다. 이 땅을 집적거렸던 기업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대우자판 터 앞 송도해수욕장은 1960년대부터 수도권 최고의 관광지로 이름을 날렸다. 1982년 4월 ‘뻐꾸기 시계’를 만들던 ㈜한독은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에 맞춰 연수구 옥련·동춘동 갯벌 137만638㎡를 매립해 세계적인 해양공원을 조성하겠다며 공유수면 매립면허를 받아냈다. 문제는 매립 토사 확보였다. 갯벌을 메우는 토사량만 530만㎥지만 160만㎥가 모자라자, 한독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준공기한을 1987년으로 미뤘다.

 이 과정에서 홍수를 막기 위해 만들기로 했던 유수지는 없어졌고, 매립 대상지는 당초 허가면적보다 늘어났다. 1994년 9월 10일 한독은 시공사 세계물산과 함께 솔밭동산, 야구장, 축구장, 야외 공연장, 갈대습지 등 시민공원을 준공했다. 이후 한독이 1997년 IMF 외환위기 사태가 발발하기 전 도산 위기를 맞으며 시민공원은 위기에 처한다.

 대우그룹은 휘청거리는 한독의 송도매립지 일부(현 송도테마파크 터)에 부평공장에서 생산한 수출용 자동차 하치장을 만들어 주면 한독과 해양공원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한독은 1996년 송도매립지 전체를 대우자판㈜에 넘겼다. 대우는 1997년 본사와 105층(480m) 짜리 초고층 빌딩, 테마파크 등을 포함한 ‘대우타운’을 짓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대우의 계획은 도시계획상 자연녹지와 유원지시설이었던 송도매립지를 상업·준주거 지역으로 바꿔야 사업이 가능했다. 용도변경에 따른 엄청난 땅값 차익이 예상돼 특혜 의혹이 번졌지만 결국 용도변경은 이뤄졌다. 2006년 5월 4일 건설교통부가 2년 내 도시개발사업이 진행되지 않으면 다시 시민공원으로 환원하는 조건으로 용도변경을 허가해 준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당시 인천시장이 구속됐다가 후에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2008년 12월 13일 시가 도시개발사업구역으로 고시하며 시민공원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앞서 2007년 이곳에는 ‘무비 테마파크’ 조성 그림이 덧입혀진다. 1조5천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연수구 동춘동 일원 49만9천575㎡의 터에 시민들을 위한 최첨단 놀이공간을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대우자동차판매㈜는 2008년 송도테마파크 조성계획 환경영향평가 조사 결과를 통해 당시 송도테마파크(49만9천575㎡) 안 21만여㎡ 규모의 비위생매립장에 생활폐기물 35만2천833㎥가 땅속 1.5m까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또 도시개발사업구역(53만8천952㎡)에는 깊이 3m까지 건축폐기물과 생활폐기물 8만2천207㎥가 매립된 것으로 추산했다.

 무비 테마파크 계획 역시 대우자판이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가면서 3개의 회사로 나눠져 추진되지 못했다. 2011년 대우자판은 인적분할을 하면서 존속 법인인 대우송도개발㈜이 새로운 땅 주인으로 등장했지만 대우송도개발마저 2014년 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는다. 그 해 대우자판 부지는 역대 최고 감정가인 1조481억 원으로 경매 시장에 나왔다.

 그러나 4차례나 유찰되며 감정가가의 3분의 1로 떨어졌다. 폐기물 처리비 부담 탓이었다. 이후 수의계약으로 삼정회계법인이 대원플러스와 전체 땅값의 10%인 315억 원에 계약했다. 부영은 2015년 12월 대원플러스로부터 계약권리를 건네 받아 잔금을 치르면서 3천150억 원에 이 땅의 주인이 됐다. 부영은 지금 이 터에 ‘송도 도심형 복합테마파크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연혁

 1962년 : 부평공장 위치에 새나라자동차 설립(8월)
 1963년 : 새나라자동차 해체(7월)
 1965년 : 신진공업사 부평공장 인수(7월)
 1966년 : 신진자동차공업㈜으로 사명 변경(1월)
 1972년 : GM과 공동출자해 제너럴모터스코리아자동차(GMK) 설립
 1976년 : 새한자동차㈜로 사명 변경(11월)
 1978년 : 대우, 새한자동차 지분 인수로 경영 참여(8월)
 1983년 : 대우자동차㈜로 사명 변경(1월)
 1983년 : 대우자동차 기술연구소 설립
 1983년 : 부평승용차 공장 설립
 1992년 : GM과 합작관계 청산
 1993년 : 판매 부문이 대우자동차판매㈜로 분리(1월)
 1996년 : 대우 군산종합자동차 공장 준공(10월)
 1998년 : 쌍용자동차 인수(3월)
 1999년 : 기업회생절차(워크아웃) 결정
 2000년 : 대우자동차 최종 부도, 법정관리 개시 결정(11월)
 2001년 : 대우차-GM 본 계약 체결
 2002년 :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 출범(10월)
 2011년 : 한국지엠으로 사명 변경

 # 대우자동차판매㈜ 부지 연혁

1966년 3월 : 한독산업㈜ 설립
1983년 5월 : 해양공원 조성 계획으로 남구 갯벌 137만638㎡ 공유수면 매립면허 취득
1989년 6월 : 매립 준공
1993년 12월 : 송도유원지 개발 추진계획 이행확약서 제출
1994년 9월 : 시민공원 준공
1996년 3월 : 한독 부도, 우리자동차판매㈜ 흡수 합병 및 부지 매입
1998년 7월 : 대우그룹, 105층 빌딩 건설 및 무비파크 건설계획, 본사 이전 계획  발표
1999년 3월 : 대우자동차판매㈜로 사명 변경
2006년 5월 : 건설교통부, 송도매립지 용도변경 조건부 허가
2008~2009년 : 대우자판, 송도테마파크 조성계획 환경영향평가 보고서 작성
2010년 4월 : 경영관리 계약체결
2010년 9월 : 경영정상화계획 이행약정 체결
2011년 7월 : 기업회생절차 신청
2011년 12월 : 대우송도개발㈜로 사명 변경
2011년 8월 : 회생절차 개시
2011년 12월 : 대우자동차판매㈜, 대우산업개발㈜ 인적분할
2014년 8월 :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 선고, 해산
2015년 7월 : 대원플러스, 3천150억 원에 수의계약으로 부지 매입 시도
2015년 10월 : 부영그룹, 3천150억 원에 92만6천952㎡ 소유권 확보
2016년 4월 : 송도테마파크 건립사업 계획서 인천시에 제출


 김덕현 기자 kdh@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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