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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廉恥)를 아시나요?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전 인천 남부교육청 교육장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7년 11월 23일 목요일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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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나는 아침마다 운동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교통 신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새벽 길을 질주하는 차량들이 무섭다. 피우던 담배를 그냥 차창 밖으로 버리는 운전자의 모습이 보이고, 주차할 수 없는 도로에 버젓이 주차해 통행에 지장을 주고 있는 크고 작은 차량들도 많이 눈에 띈다. 지난 밤새 누군가가 버렸을 가로수 옆 쓰레기 더미가 눈에 거슬린다. 스포츠센터의 라커룸에 들어서면 신발장이 있는데도 바닥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운동화와 슬리퍼가 정신을 산란하게 한다. 서로 불편하지 않도록 정해 놓은 규칙도 있건만 운동하는 중에도 거침없이 행동하는 사람들 때문에 적지 않게 신경이 쓰인다. 샤워장은 더욱 어지럽다. 사용한 수건들은 바닥에 널려있고 화장품은 뚜껑이 열린 채 아무렇게나 놓여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이처럼 염치없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염치는 청렴할 염(廉)과 부끄러울 치(恥)가 합쳐진 한자말로 사전적 의미로는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중국 고전 ‘관자(管子)’에서는 염치를 나라를 지탱하는 근간으로 보았고, 우리나라 조선시대에서는 염치(廉恥)를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막는 근본으로 여겼으며 염치가 없는 사람은 관료가 될 수 없을 만큼 공직자의 기본 윤리이자 성품이었다.

속담에 ‘염치와 담을 쌓은 놈’이란 말이 있는데 예의와 염치가 조금도 없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염치와 담을 쌓은 사람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파렴치(破廉恥)한 사람이라고도 부른다. 후안무치(厚顔無恥)라는 말도 있다. 낯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말이다. 저간에 벌어진 소위 지도층 인사들의 파렴치한 행위로 추락된 우리나라의 국격(國格)이 언제 어떻게 다시 회복할 수는 있는 것일까.

지난달 말 우리나라 최대의 교원단체가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 교사, 교장, 교감, 원장, 대학교수 등 교원 1천196명을 대상으로 학생 생활지도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대상의 98.6%(1천179명)가 "학생 생활지도가 과거보다 어려워졌다"고 답했다고 한다. 응답자의 87.2%는 "매우 어려워졌다"고 호소해 교사들이 문제 행동을 보이는 학생을 제지하고 가르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느끼는 것으로 분석됐다. 일부 누리꾼들은 학생 인권을 보호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교권도 보장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효과적인 학생 생활지도를 위해서는 적절한 제재나 체벌도 필요하고 강력한 학교 규칙을 만들어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어릴 때부터 규칙을 지키는 습관을 알게 해야 어른이 되어서도 준법 정신이 투철한 민주시민이 되는 것이라고도 주장한다.

모두가 옳은 말이고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는 있지만 정답은 아닌 것 같다.

중국 고전이나 조선시대에서나 중히 여겼던 염치가 이제는 오늘을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필요하게 됐다.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곧 ‘염치’ 있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사회가 되려면 학교에서라도 제대로 된 염치교육을 시행한다면 나름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다른 교육 사례로 비춰 보아 당장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강한 규칙이나 제재보다는 교육이 선행돼야 하는 것이 옳다. 다만 염치교육은 학생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교원은 물론 학부모에게도 필요하고 나아가 일반 시민들에게도 시행돼야 한다.

염치 없는 사람은 자신만을 알기 때문에, 타인의 어려움이나 불편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으레 학연이나 지연, 혈연을 찾고 직위에 집착하고 원칙을 무너뜨리는 몰염치한 일을 하고도 후안무치한 자세로 일관한다. 이런 사람들이 많은 사회일수록 원칙이 설 자리가 없는 사회, 부정부패가 만연하는 사회가 되고 만다. 사람들마다 무엇이 염치 없는 행동인지를 알고 그런 행동을 경계하면서 염치 없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면 자연스럽게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한다.

한 의사가 쓴 글에 의하면 몰염치한 사람들이 의학적으로는 더 건강할 수도 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을 힘들고 어렵게 하면서도 자신은 스트레스를 덜 느끼기 때문에 ‘신경성 질환’도 거의 없다고 한다. 재미있는 분석이기는 하지만 이런 염치 없는 사람들이 자꾸 늘어간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얼마나 더 험악하고 삭막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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