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친구가 새 사무실을 열고 초대를 했다. 온라인 직거래 장터를 통해 생활용품을 파는데, 매출이 급격히 늘어 넓은 사무실이 필요했단다. 132㎡ 넘는 사무실. 새 장비와 집기들이 빼곡히 자리 잡았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녀석의 의자다. 별도의 집무실 없이 다른 직원들과 한 공간에서 일하지만 의자는 고가의 맞춤형이다. 이유를 물으니 ‘그래도 의자는 달라야지’한다.

 문득 2011년 작고한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신제품 발표회장에서 여유롭게 앉아 있던 의자가 생각났다. 청바지와 검정색 터틀넥, 운동화 차림을 한 그가 앉아 있던 검정색 가죽의 정육면체 1인용 소파. 세계 3대 건축가로 꼽히는 르 코르뷔지에가 디자인한 작품 ‘그랑 콩포르’다. 인체의 비례를 고려한 가장 편안한 의자로 평가받는다. 그를 비롯한 세계 3대 건축가들은 모두 스스로 의자를 디자인했는데, 이유는 뭘까?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의자는 ‘남자의 물건’이라 정의했다. 남자들의 공간에서 의자가 차지하는 의미는 단순한 기능적 차원을 뛰어넘는다. 남자의 사회적 지위와 권력, 자부심, 아이덴티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의자는 권력이다. 사회적 지위가 달라지면 제일 먼저 바뀌는 것이 의자다. 한때 한국사회에서 ‘회전의자’가 가졌던 의미를 기억해보면 안다. 남자들은 돈과 권력이 생기면 의자부터 바꿨다. 오늘날도 의자는 ‘위로’다. 돈 생기면 제일 먼저 비싸고 우아한 의자를 산다.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 간 적이 있다. 청빈의 도를 따라 살아간 법정스님께서 기거했던 곳이다. 스님의 영정을 모신 진영각에 들어서면 오른쪽 처마 밑에 오래된 나무 의자 하나가 놓여 있다. ‘빠삐용 의자’로 불리는데 스님께서 직접 만들어 즐겨 앉았던 의자다. 스님께서는 저서 「무소유」에서 "이 의자에 앉아 나도 인생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본다"고 말씀하셨다. 또 이런 말도 하셨다. "언젠가 한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갈 것이다. 하고 많은 물량일지라도 우리를 어쩌지 못할 것이다." 친구의 고가 의자가 단순 부와 권력의 상징이 아닌 휴식과 성찰의 상징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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