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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락산의 전설

김상돈 경기도의회 의원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7년 11월 23일 목요일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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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돈 경기도의회 의원
의왕시 오전동에 소재한 모락산은 해발 385m의 산으로 정상에 오르면 의왕시내는 물론 주변의 군포, 안양, 과천, 서울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눈이 즐거운 곳이다. 모락산의 정상부는 바위로 이루어져 산행 시 절경을 만끽하며 등반할 수 있어 등산객의 인기가 높다. 특히 산 정상에서 기다랗게 늘어놓은 가래떡처럼 경수산업도로가 한눈에 들어오고, 청계동 방면으로는 백운호수와 청계산, 안양군포 방면으로는 수리산과 관악산까지 조망권에 들어온다. 또한 모락산 정상에서는 매년 1월 1일 해맞이 행사가 열리고 있다.

 모락산이라 부르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옛이야기가 들려오는 데 그 중 하나는 조선 제7대 임금 세조가 단종을 사사하고 왕위를 찬탈한 것을 본 세종대왕의 넷째 아들 임영대군이 장님으로 가장해 모락산 기슭에 은신처를 마련하고 숨어 살았다고 한다. 혹자는 세조가 임영대군이 장님이어서 차마 죽이지 못하고 모락산으로 유배를 보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은신처를 모락산으로 정한 임영대군은 모락산 정상에 매일 오르며 서울을 향해 ‘망궐례(望闕禮)’를 올렸다 해 "수도인 洛陽(중국의 수도 즉 한양을 일컬음)을 그리워하는 산"이라는 뜻으로 사모할 慕자를 써서 모락산(慕洛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옛이야기는 이 모락산에 동굴이 하나 있는데 동굴에 얽힌 전설이 모락산의 어원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 선조 25년 임진왜란 당시 왜구의 거침없는 진격으로 모락산 이곳까지 들이닥쳤다. 온 동네 사람들이 피난을 간 곳이 모락산 동굴이었는데 그때 어린 아이 하나가 동네사람들과 떨어져 동굴 속으로 피신하지 못하고 홀로 남아 동굴 밖에서 울고 있었다 한다. 그후 왜구들이 아이를 발견했고 왜구들은 마을에 인적이 없었던 점과 아이가 동굴 앞에서 울고 있는 것을 보고 온 동네 사람들이 동굴 속에 은신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으며 동굴 입구에 불을 놨다고 한다. 그리하여 온 동네 사람들이 동굴 속에서 죽었다. "몰아서 죽었다"하여 ‘모라 죽은산’에서 ‘모락산’으로 명명되었다는 것이다. 순 우리말적 어원이다.

 모락산에는 소나무에 대한 전설도 내려오고 있는데 모락산에는 당상인 정3품 소나무가 있었다 한다. 지금은 고사해서 형체는 볼 수 없고 소나무에 얽힌 옛이야기만이 구전되고 있다. 조선시대 효행으로 이름난 왕인 정조대왕은 비명으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성에 모시고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재위기간 66회에 걸쳐 성묘를 하였다. 당시에 정조가 서울에서 화성의 사도세자 능까지 가는 여정은 대체로, 남태령 고개를 넘어 인덕원을 지나 지지대고개를 거쳐 능행차를 했었다. 인덕원에서 지지대고개를 넘어 설 때까지 모락산의 커다란 소나무가 정조의 눈에서 떠나지를 않았는데 정조는 그 소나무가 자신의 행차를 계속 주시하면서 호위하고 있는 것으로 느꼈다 한다. 그리하여 정3품 벼슬을 내렸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모락산길을 걸으며 정조대왕의 효심을 되돌아보고 숨 가쁘게 살아온 삶을 잠시나마 잊어보는 것도 좋다. 그리고 내려오는 길에 이희승 박사의 한글사랑 정신을 살리고자 조성한 갈미한글공원, 백운호수, 임영대군 사당도 둘러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줄 것이다. 앞으로 모락산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내 이웃과 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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