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 씨는 "매립승인권자인 이명수 전 봉덕학원 이사장네만 땅을 받고 영세민들은 법을 모르고 배움이 부족해 손에 아무 것도 쥐지 못했다"며 "봉덕학원은 땅 받아서 생활관 짓고 할 때 경서동 자연부락 사람들은 땅 한 평 못 받고 밀가루로 수제비 밖에 끓여 먹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함께 자조근로사업에 참여한 청라도 약 40가구, 경서동 난지도 약 20가구는 간척지 땅을 아주 조금이지만 받긴 받았다. 땅을 받을 수 있다는 경서동 주민들의 희망은 IMF 때 동아그룹이 무너지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동아가 가진 김포 간척지를 분배받기 위해 정부 도움이 필요했지만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농어촌공사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 땅 주인이 옮겨가면서 다행히 경서동 주민들은 정식으로 임대차 계약(2004년)을 맺고 농사를 시작했다. 추 씨는 1992년부터 벼농사를 지었다. 땅을 분배받았으면 112가구를 영농조합으로 묶어 농사로 얻은 수익을 배당금으로 지급하려고 했다. 김포 간척지 개발이 시작되면 농사를 멈추고 각자 알아서 땅을 팔거나 이용하는 꿈을 꿨다.
경서영농회사법인을 만들어 10만2천237㎡에 농사를 졌던 추 씨는 임대료로 연간 821만 원을 냈다. 19개 영농법인이 152만7천802㎡에 벼농사를 지었고, 연간 30억∼40억 원의 수익을 냈다. 사실 LH가 땅을 농경지로 빌려준 건 세금을 감면받기 위한 수단이었다. 동아는 김포 간척지에 농사를 짓지 않아서 비업무용 토지 보유세 등 연간 200억 원의 세금을 물었다. 청라국제도시가 들어오면서 경서동 주민들은 농사도 못 짓게 됐다. LH를 상대로 보상을 놓고 싸워봤지만 돌아온 것은 1천만 원뿐이었다. 이것도 농어촌공사가 위로금으로 지급한 거였다.
추 씨는 "농기계가 대당 5천만∼1억 원이 넘어 주민 중 5억 원 이상 투자한 사람도 있다"며 "간척지 땅을 못 받아 상처받고 닦아 놓은 농경지에서 쫓겨 나면서 두번 상처 받았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3면>
이창호 기자 ych23@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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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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