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jpg
▲ 인천 남동인더스파크 전경
IMF 외환위기 20년 남동인더스파크는 ‘영세(零細)의 굴레’를 벗지 못했다. 시작부터 그러했다. 남동인더스파크는 정부의 영세 공장 이주계획에서 출발했다.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상임위원회는 서울 영세 이주대상 중소기업에 대한 입지 대책’을 발표한다. 서울 내에 땅이 없어 오갈 곳 없는 3천151개 영세 이주대상 공장의 입지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천 폐염전 지역 약 660만㎡를 공업단지로 조성하기로 했다. 정부는 1982년 또 다시 영세 업종 이주계획을 내놓는다. 그나마 여력이 있는 기업은 반월공단으로 옮아간 뒤였다. 주로 공해 유발 업종 등 만이 남았다.

 공장 이사비용도 없어 버틸 대로 버틴 공장들은 1985년 조성이 시작된 남동인더스파크으로 밀려 났다. 남동인더스파크는 1992년까지 두 단계를 거쳐 인천 남동구 논현동·남촌동 일대 957만4천㎡ 면적에 조성됐다. 서울에서 밀려난 유해 업종이라 해도 먹거리가 부족한 인천에는 큰 힘이 됐다. 서민들이 살아갈 일자리가 됐고, 지역 발전의 기틀이 됐다. 1997년 인천지역 산단의 생산 실적은 9조2천43억 원으로 인천지역 내 총생산 50조4천495억 원의 18.2%를 차지했다. 수출 실적은 19억700만 달러로 시 전체의 20.1%였다. 산단 고용인원은 지역 전체(109만 명)의 7.6%에 해당하는 8만3천 명이었다.

▲ 옛 한국화약 주변 남동인더스파크 일대.
인천 최대 규모의 남동인더스파크는 인천 제조업의 중심이자 국가 수출의 기반이었다. 그러나 자본력이 약한 영세 기업에게 외환위기를 버텨낼 맷집은 없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인천지역은 종업원 99명 이하 중소기업 비중이 96%에 해당했지만 부가가치생산액 등은 전체의 35% 가량에 불과했다. 그만큼 지역의 경제적 기반이 허약했다는 것이다. 1998년 상반기 중 인천지역 어음부도율은 1.91%로 전년 같은 기간 0.81%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 전국 평균치 1.41%보다도 0.5% 높아 부산 다음을 기록했다. 이는 IMF 외환위기 이후 기업 자금사정 악화에 대한 인천 중소기업의 내성이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의미다. IMF 외환위기 직후 1천 개에 달하는 업체가 부도를 맞았다. 공단가동률은 1998년 71.9% 까지 떨어졌고, 실업률은 8.4%를 기록해 타 지역 평균을 웃돌았다. 특히 남동인더스파크의 경우 대우 사태의 여파로 가동률이 66.8%까지 하락했다. 밤낮 없이 돌던 공장은 하나 둘 불이 꺼졌다. 생산·수출·판매가 크게 감소해 일감이 생길 때만 가동하는 ‘일시가동 공장’이 속출했다. 남동인더스파크 내 자동차부품업체의 가동률은 40% 수준으로 떨어졌다. 부도와 생산 중단으로 20~30%에 해당하는 공장 매물이 쏟아져 나왔다. 문 닫은 공장이 속출하자 부동산업이 성행했다. 부도를 맞은 영세 공장이 떠나간 빈자리는 소규모 영세 기업(임차 공장)이 채웠다. IMF 외환위기로 힘을 잃은 남동인더스파크은 ‘공장 쪼개기’로 더 허약해졌다.

▲ 꼬마 열차가 철교를 따라 지나던 남동인더스파크 조성 초기 모습.
IMF 외환위기 이듬해인 1998년 2천934개였던 입주업체가 2008년에는 4천936개로, 2017년(8월 기준)에는 6천472개로 쪼개졌다. 같은 면적(957만4천㎡) 이지만 20년 만에 소규모 기업이 2배 가량 늘어난 셈이다. 세 들어 사는 공장의 비율도 크게 늘어 영세 기업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최근 5년 간 남동인더스파크 임차업체 비율은 2012년 67.1%(6천628개 중 4천454개)→2013년 67.7%(7천173개 중 4천857개)→2014년 70.8%(6천925개 중 4천908개)→2015년 71.2%(7천27개 중 5천9개)→2016년 70.1%(4월 기준 6천737개 중 4천729개)였다. 사실상 공단의 기능이 아닌 ‘임대 단지’로 전락한 것이다.

 남동인더스파크의 현재 평균 임대료는 3.3㎡당 보증금 30만 원 가량에 월세는 3만∼3만5천 원선이다. 2층 이상은 3.3㎡당 1만5천 원선에 거래되고 있지만 선호도가 떨어진다. 330㎡ 규모의 1층 공장을 임차할 경우 보증금 3천만∼3천500만 원에 월세 300만∼350만 원을 내야 한다. 세 부담은 늘어나는 반면, 공장가동률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남동인더스파크는 2014년 78.8%의 가동률을 기록했지만 수출부진으로 인해 지난해 2월 63.9%까지 떨어졌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이 발표한 8월 가동률 또한 69.7%(전월 대비 -0.6)로 나타나 70%에 못 미쳤다. 이는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1998년 3월(66.6%)과 2009년 1월(67.1%)과 비슷한 수준이다. 수출액도 크게 감소했다. 남동인더스파크의 지난해 총 수출액은 29억5천786만6천달러로 2015년 34억9천34만6천달러 대비 15.2%나 줄었다. 지금도 세 부담을 못 이긴 임차 중소기업들은 문을 닫거나 더 싼 부지를 찾아 타 지역으로 떠나고 있다.

# 알맹이 빠진 구조고도화… 악취 피해는 ‘주민 몫’

다같이 먹고 살자고 하는 산업단지가 아니었다. 적당히 돈을 벌다가 떠나면 그뿐이었다. 환경이야 어찌 됐건 그건 남들 얘기였다. 악취 등 환경문제는 주변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으나 구조고도화는 더디다. 남동인더스파크가 그렇다.

1985년 2월 인천시로부터 공유수면매립면허를 얻은 토지개발공사(현재 LH)는 남촌·도림·논현·고잔·동춘동 등지를 매립했다. 총 1천700억 원을 투입해 280만9천497㎡의 매립지와 염전, 농지 등 총면적 956만5천536㎡에 이르는 공단 터를 닦았다.

▲ 염전이 있었던 남동인더스파크 일대 도면.
남동인더스파크는 조성 초기부터 환경문제로 몸살을 앓았다. 입주업체를 하나라도 더 끌어들이려고 업종 규제조차 하지 않은 탓이었다. 인천시는 1985년 10월 1천896개 공장 가운데 90.6%인 1천718개가 ‘공해 공장’이라고 발표했다. 정부를 향해 ‘인천에 더 이상 공해 공장을 입주시킬 수 없다’는 항의의 표시였다.

시는 남동공단에 입주한 화학업종으로 환경이 더욱 나빠지자 1989년 비상대책까지 내놨다. 그전 해 7월에는 연수구 동춘동 앞바다 2천㏊의 어패류가 남동인더스파크에서 버려진 폐수로 떼 죽음을 당한 사고가 발생한데 따른 후속조치였다.

시는 2단지에 화학과 섬유 등 20개 공해 업체의 입주를 제한해 공해 발생을 막겠다고 발표하고 이를 정부에 건의했다. 그러나 시의 건의는 당시 상공부에 의해 묵살되고 말았다.

그 부작용은 심각했다. 옛 주택공사(현 LH)는 2000년께 인천논현2지구 택지개발사업을 추진하고 나섰다. 문제는 입지였다. 논현2지구, 특히 2단계 사업대상지가 화학공장들이 몰려 있는 남동인더스파크 코밑으로 파고 든 것이었다. 감사원은 주변의 악취 피해가 예상되자 논현2지구 2단계 택지개발사업에 대해 부적합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자 주공은 비상이 걸렸다. 이미 공사비 210억 원 등 총사업비 6천142억원을 투입(공정율 24.5%)한 논현2지구 택지개발사업을 벌이는 중이었다. 2단계를 추진하지 못할 경우 손실이 막대했다. 2단계 사업은 76만㎡에 아파트 3개 단지(4천298가구)와 상업용지를 조성하는 계획이었다. 주공은 궁리 끝에 협의안을 제시했다. 시가 아파트를 건설하도록 협의해 주면 남동인더스파크에 입주한 악취유발업체의 저감시설을 확 바꿔 주겠다는 파격적인 ‘협상카드’를 던진 것이었다. 시는 완충녹지 폭 확대(150m→최대 290m) 등 이런저런 조건을 달아 아파트 건설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환경영향평가를 ‘조건부 동의’ 의견을 달아 협의했다. 시는 주공으로부터 남동인더스파크 악취저감시설 설치 지원비 230억 원을 받아냈다. 남동인더스파크를 끼고 사는 남동·논현동 주민들은 여전히 악취에 시달린다.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남동인더스파크 안 악취배출시설은 1천354개에 이른다. 2009년 1천139곳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악취배출사업장이 늘고 있는 추세다. 남동인더스파크는 2009년 12월 반월·시화와 구미, 익산 등 국가산업단지 등과 함께 구조고도화 시범단지로 지정돼 올해 8년 차에 접어들었다. 주안·부평 산업단지 역시 2013년 정부의 구조고도화사업 확산 단지로 지정됐다.

올해 15개 구조고도화 사업에 3천20억 원이 투입됐거나 투입될 예정이다. 구조고도화 사업은 아직 뚜렷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환경문제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업체가 늘고 있어 서다.

구조고도화 사업이 시작된 2009년 12월 인천지역 산업단지(남동·주안·부평)의 입주업체 수는 6천645곳이었다. 지난해 12월에는 8천174곳으로 23.01%가 늘어났다. 하지만 입주업체 당 근로자 수는 같은 기간 14.3명에서 15.9명으로 소폭 늘었다. 2009년 12월 인천지역 산업단지의 임차율 비율은 56%(3천737곳)에서 지난해 12월 64%(5천292)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는 인천지역 산업단지에 영세 업체들만 늘고 있을 뿐, 생산성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구조고도화 사업도 치밀하지 못했다. 사업이 민간투자로 이루어지면서 ‘수익성 있는 사업에만 몰리는 구조로 퇴색되기도 했다. 실제 남동인더스파크 구조고도화 12개 사업 중 절반에 이르는 6개가 사업이 민간투자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는 아파트형 공장을 지어 분양하는 사업이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주도한 구조고도화 사업도 폐기물처리시설 터를 용도변경해 공동물류센터를 건립해 분양했다. 지금까지 인천지역 구조고도화 사업은 부가가치 창출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산업단지 내 업종변화는 미미했다. 실제 최근 도금업체를 이주시켜 악취와 오·폐수를 한 곳에서 관리하려던 일부 구조고도화사업은 흐지부지된 상태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유사 업종을 한데 뭉치는 지식산업센터 건립 등은 업종고도화가 아니라 수익성 부동산 개발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6월 열린 인천지역 산업구조 고도화와 고용의미래 토론회에서 서정국 교수(인천대) 등은 구조고도화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업종고도화, 산업의 다양화, 혁신 등을 주문했다. 기존 주력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4차 산업혁명 등 신 성장산업을 육성해야 구조고도화를 제대로 일궈 낼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 남동인더스파크 추진 경위

▶1980년 7월 2일 : 국보위 상임위원회에서 조성계획 확정
▶1984년 7월 11일 : 수도권정비 기본계획 고시(남동인더스파크→개발유도권역 지정)
▶1985년 2월 14일 : 조성사업 실시계획 승인(건설부고시 제54호)
▶1985년 4월 20일 : 남동인더스파크 1단계 공사 착공
▶1986년 4월 2일 : 공업배치법상 공업유치지역으로 지정(상공부)
▶1987넌 5월 4일 : 남동인더스파크 면적 및 용도별구획 고시(상공부 고시 제87-13호)
▶1989년 12월 29일 : 남동인더스파크 1단계 조성사업 준공(인천시 공고 제294호)
▶1992년 6월 30일 : 남동인더스파크 단계 조성사업 준공
▶1997년 2월 28일 : 3단계 개발사업 준공(서울지방국토관리청 공고 제1997-42호)
▶2010년 11월 4일 : 산업단지 구조고도화계획 승인(지경부 고시 제2010-203호)

이승훈 기자 hun@kihoilbo.co.kr 

홍봄 기자 spring@kihoilbo.co.kr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