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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작은 나라 공주와 특종을 쫓는 신문기자 사이의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를 다룬 영화 ‘로마의 휴일’은 여러모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우선 이 영화의 가장 큰 수확은 무명에 가까웠던 배우 오드리 헵번을 스타덤으로 이끌었다는데 있다. 유서 깊은 도시 로마를 배경으로 아름답게 펼쳐지는 풍광과 헤어나올 수 없는 매력을 발산하는 배우들의 열연으로 ‘로마의 휴일’은 가슴 시린 러브스토리의 고전이 됐다.

 배우들만큼이나 인상 깊은 이 작품의 스토리는 195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원작상을 수상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런데 여기에는 비밀이 있었다. 바로 시나리오 작가 달튼 트럼보가 수상의 영광에도 불구하고 전면에 나서지 못한 채 자신의 존재를 철저히 숨겨야만 했던 사연이 그렇다. 11개의 가명으로 활동하며 유령작가로 활약해야 했던 한 작가의 이야기를 영화 ‘트럼보’를 통해 만나보자.

 1940년대 할리우드의 황금기는 시나리오 작가 달튼 트럼보의 전성기와 그 궤를 같이한다.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이야기꾼 트럼보는 그러나 매카시즘의 광풍에 휩쓸려 요주의 인물로 분류되어 손발이 묶이게 된다. 2차 대전의 종식과 함께 미국과 구 소련의 양강 구도는 냉전시대를 몰고 온다. 이에 미국은 반공주의를 강화하며 정치, 사회, 문화, 예술 전반에서 소위 ‘빨갱이 색출’이라는 매카시즘의 회오리에 사로잡힌다.

 마치 대대적인 숙청작업처럼 펼쳐지던 당시의 광기는 진보 성향의 예술가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활동을 제한한다. 바로 그 대상 중 트럼보가 있었다. 하지만 주변의 냉대와 불합리한 사회구조도 그의 창작력을 꺾을 수 없었다. 세 아이의 아버지이자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또한 그를 끊임없이 일으켜 세우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는 좌절하거나 신념을 버리는 대신 모든 것을 끌어안은 채 무려 10개가 넘는 가명으로 활동하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 낸다.

영화 ‘트럼보’는 이념 갈등이 빚어낸 암흑의 시기에 활동한 시나리오 작가 달튼 트럼보의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진보적 신념을 버리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했던 당시 미국 사회의 분위기를 다큐멘터리적 구성으로 담아냄과 동시에 창작에 대한 열정과 먹고 살기 위해 기계적으로 글을 써야만 했던 아버지로서의 고뇌도 아우르고 있다.

 이처럼 한 인물에 대한 다층적인 접근은 작가 ‘트럼보’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 형성한다. 가명으로 작업한 영화 ‘로마의 휴일’과 ‘브레이브 원’으로 각본상을 두 차례 수상한 그는 1960년, 영화 ‘스파르타커스’로 당당히 본명을 되찾을 수 있었다.

 영화 ‘트럼보’는 매카시즘이라는 시대의 아픔을 넘어 개인의 신념과 창작의 자유 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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