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밀레니엄’을 한 달 앞둔 1999년 12월 IMF 외환위기의 후폭풍은 거셌다. 국내 30대 기업 중 절반 이상이 빌린 돈을 갚지 못해 그대로 고꾸라졌다. 대기업 하청을 받던 중소기업은 한 달 최대 1천600개 사가 도산했다. 구조조정의 칼 바람에 퇴직금도 못 받고 길 거리로 내몰린 실업자만 150만 명에 달했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10년간 몸 담았던 대우그룹도 예외는 아니었다.

▲ 셀트리온
그도 IMF 외환위기로 공중 분해된 대우그룹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실업자가 된 그는 인천의 한 벤처·창업센터에 훗날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의 모태가 된 ‘넥솔(Next Solution)’을 설립한다. 현재의 사장단 9명 중 6명이 2000년 창업 초기 멤버들이다. 유헌영·기우성·김형기 사장을 비롯해 이근경 고문, 문광영 사장 등이 차례로 그의 창업에 가세했다. 창업의 시기, 다양한 사업의 가능성을 타진하던 서 회장은 무작정 노벨의학상 수상자인 바루크 블럼버그 박사 등을 찾아가 생명공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들과 대화하고, 이를 통해 바이오시밀러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산업공학을 전공한 그는 생명공학 분야에는 문외한이었지만 국가 산업의 미래가 생명공학에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서 회장은 조만간 바이오의약품(항체 의약품)의 특허 만기가 줄줄이 이어진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1천조 원에 달하는 전 세계 제약시장에서 항체의약품의 매출은 240조 원에 육박했지만 막대한 개발비용과 높은 기술 장벽, 고가의 제품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 셀트리온 합작회사 JVC 설립을 위한 백스젠·KT&G 등과 양해각서 조인식. <셀트리온 제공>
오리지널 항체 의약품과 동등한 치료효과를 가지면서도 가격은 합리적인 ‘바이오시밀러’를 그가 선점해야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는 세계적 생명공학회사 제넨텍의 자회사인 백스젠의 기술지원과 KT&G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2001년 10월 간척 사업이 진행 중이던 송도국제도시에 9만여 ㎡ 규모의 공장 부지를 사들인다. 같은 달 그는 국내 최초 바이오의약품 개발과 생산을 위한 셀트리온 합작회사의 출범을 가시화하는 양해각서(MOU)를 국내외 기업과 맺었다.

 2002년 2월 주식회사 셀트리온이 탄생했다. 6월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백스젠과 합작회사인 VCI를 설립했는데, 이곳에서 초창기 직원들은 송도1공장 가동에 필요한 기술과 노하우를 축적한다. 2003년 선발된 셀트리온 공채 1기 사원들은 송도 매립지의 척박한 땅에 있던 컨테이너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고, 훗날 이들은 회사의 주요 관리자로 성장했다.

▲ 셀트리온 연구원
하지만 사업은 순탄하지 않았다. 2002년부터 준비해 온 에이즈 백신 개발 프로젝트는 3상 임상시험이 모두 실패했고, 적혈구 생성인자 제재인 EPO 개발도 성공하지 못했다. 서 회장은 ‘대주주가 바뀌어도 회사는 존속해야 한다’는 대명제를 세우고 5만L 규모의 생산 설비를 갖춘 1공장 건설(2천400억 원 투자)에 이어 3천억 원을 더 투입해 2공장(9만L 규모) 건립을 추진한다. ‘선(先) 생산설비 완비, 후(後) 계약생산(CMO)’이라는 서 회장의 역발상 전략이었다.

 1공장 준공식을 한 달 앞둔 2005년 6월 셀트리온은 미국 BMS사와 첫 CMO 계약 체결에 성공한다. 2006년 셀트리온은 CMO를 통해 15억 원의 첫 수익을 올렸다. 그리고 이 돈을 회사 복지재단 설립에 쏟아 붓고 국가 발전과 사회공헌에 대한 서 회장의 다짐을 가장 먼저 실천했다.

 셀트리온의 철저한 품질관리는 2007년 말 아시아 국가 최초로 미국식품의약국(FDA) CGMP 규정을 충족시켰고 설비 승인을 획득한다. 2008년에는 코스닥에 상장하고 순식간에 시가총액 1위 종목으로 등극한다. 이듬해 서 회장은 안정적이고 수익성 높은 CMO 사업을 접고 항체 바이오시밀러 개발로 사업을 전환한다. ‘내 것 아닌 남의 것만 계속 만들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셀트리온의 저력을 알아 본 싱가포르 테마섹홀딩스는 2010년 셀트리온에 2천80억 원을 투자했고, 이 즈음 2공장이 준공되면서 셀트리온은 총 14만L의 바이오의약품 생산설비를 갖춘다. 연간 3조 원 이상의 바이오의약품 생산능력을 보유한 셈이다.

 2011년 11월 셀트리온은 자가면역질환 치료제인 바이오시밀러 ‘램시마’를 총 19개 국가 856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벌여 글로벌 임상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는 기자회견을 연다. 전 세계 바이오업계의 시선이 셀트리온에 집중된 순간이었다. 바이오시밀러의 글로벌 임상 성공은 셀트리온이 최초였다.

▲ 2016년 8월 바이오시밀러 램시마의 미국 수출 첫 출하.
이후 램시마는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판매허가에 이어 유럽의약품청의 제품허가가 승인된 뒤 노르웨이, 캐나다, 일본, 터키 등 세계 각국의 허가로 이어졌다. 2014년에는 두 번째 글로벌 임상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친 ‘허쥬마(유방암 치료제)’도 국내 식약처로부터 판매허가를 받았다.

 지난해 셀트리온은 램시마의 누적 수출액 1조 원을 달성(처방 환자 14만8천여 명)하는 동시에 ‘트룩시마(혈액암 치료제)’의 임상을 종료하고 역시 국내 판매허가를 획득했다. 영업이익은 2천526억 원을 기록했다. 2명에서 시작한 셀트리온은 현재 1천2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사업 초기 서 회장에게 붙던 물음표는 이제 완전한 느낌표가 됐다.

 # 바이오의약산업 가능성과 과제

 ‘왜 바이오의약산업을 미래의 신성장 동력으로 꼽는가.’ 한국 경제는 1960년대 노동집약적 경공업과 70∼80년대 철강·조선·자동차로 대변되는 중공업, 그리고 90년대와 2000년대 초기까지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 IT·첨단산업이 주도해 왔다. 하지만 조선·해운·철강 등 중공업 위주의 전통산업은 이미 성장한계에 달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고, IT산업은 중국의 맹추격으로 국내기업의 입지가 하루 하루 좁아지고 있다. 실제 국내 제조업의 평균 영업이익율은 IMF 외환위기 때인 1997년 8.25%에서 2014년 4.21%로 계속 낮아지는 추세다. 한국 경제의 의존도가 가장 높은 반도체산업과 자동차산업을 이끌고 있는 국내 대기업의 최근 3년간 영업이익률도 9∼13%대에 불과하다. 하청 제조업체(3%대)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지난해 셀트리온의 영업이익율은 43.7%를 기록했다. 국내 제약사 평균 영업이익율(9.4%)의 5배 수준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어떤가. 지난 9월 19일 코스피 상장 10개월 만에 120년 전통의 세계 1위 바이오의약품 생산업체인 스위스 론자를 제치고 이 분야 시가총액(22조여 원) 1위를 거머졌다. 뿐만 아니라 연말까지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제3공장이 완공되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연간 총 36만L의 바이오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다. 론자(26만L), 독일 베링거잉겔하임(24만L) 등을 제치고 생산 규모로도 세계 1위를 제패할 날이 멀지 않았다. 8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셀트리온그룹과 삼성그룹이 바이오의약산업에 이 같은 전사적 역량을 결집하는 데는 이 시장의 규모와 성장판도가 기존 제조업과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세계 의약품시장은 1천조 원 이상으로 전 세계 자동차 시장 규모를 능가한다. 10여조 원 대의 한국 자동차 및 스마트폰 산업이 중국의 추월로 휘청거린다고 하더라도 바이오의약품(항체 의약품 혹은 바이오시밀러) 한 제품만으로도 조 단위의 폭발적인 매출을 끌어내 국가 경제를 선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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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로슈의 경우 2015년 항체 의약품인 리툭산, 아바스틴, 허셉틴 등 단 세 가지 제품의 판매로만 23조 원의 매출을 올렸다. 국내 90여 상장제약사의 매출총액(20조 원)을 넘긴 셈이다.

 셀트리온의 경우도 바이오시밀러 램시마의 해외 출시 3년 만에 누적 수출액 1조 원을 돌파했다. 이처럼 바이오제약산업은 오리지널 바이오의약품의 대량 특허절벽과 맞물리면서 매년 10%에 가까운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인구 고령화와 질병 치료라는 보편성 및 지속가능성을 모두 담보할 수 있는 미래의 핵심 먹거리로 급부상 했다. 하지만 신약 개발기간(6∼10년) 중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 바이오업계의 특성상 1997년, 2008년과 같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또 다시 닥치거나 다국적 제약사와 중국 및 인도 기업들의 추격전이 본격화된다면 현재의 호황을 그때도 누릴 수 있을 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총 30여 개의 바이오 관련 기업 및 기관이 입주한 송도국제도시에서 소수의 대형 생산·제조기업이 주도하는 바이오의약산업은 지역경제와의 낮은 연관성 및 미흡한 파급효과로 ‘산·관·학 클러스터’ 강화의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대형 바이오의약품 제조사의 해외 업체와의 높은 연계성으로 지역 바이오 클러스터를 주도할 리더십은 부족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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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의약품은 약물표적 발굴과 후보물질 합성, 전임상시험, 1~3임상시험, 허가, 생산, 판매 등 여러 단계를 필수적으로 거치는데, 각 단계별로 지역 대학과 병원, 공공연구소, 중소·벤처기업, 거대 제약사 등과의 교류·협력을 지금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도 "송도국제도시는 세계적인 바이오 클러스터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지만 그렇기 위해서는 글로벌 제약기업과 연구기관, 병원 등이 상호 협업하며 성장할 수 있는 여건부터 우선 마련돼야 한다"고 진단한 바 있다.

 신성장산업에 대한 정부와 인천시의 전폭적인 지원과 이를 바탕으로 한 지역 일자리 창출, 지방세수 증대, 바이오 연관 산업의 생태계 형성 등 지역경제의 선순환 구조와 경제적 파급효과를 제대로 볼 수 있기를 시민 모두가 염원하고 있다.

# 셀트리온 주요 발자취

▶1999년 12월 인천 연수구청 벤처센터에 넥솔 창업
▶2001년 10월 백스젠·KT&G와 합작회사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 체결
▶2002년 2월 송도 4공구에 셀트리온 설립, 6월 미국에 VCI 설립
▶2003년 3월 1공장(5만L 규모) 기공식
▶2005년 6월 BMS사와 CMO 공급계약 체결
▶2006년 7월 2공장(9만L 규모) 기공식
▶2007년 12월 1공장 CGMP 생산 설비 미국 FDA 인준
▶2008년 8월 코스닥 상장
▶2009년 3월 넥솔, 셀트리온헬스케어로 사명 변경
▶2010년 3월 램시마 글로벌 임상 개시, 5월 테마섹홀딩스 투자계약 체결
▶2011년 10월 2공장 준공식, 11월 트룩시마 글로벌 임상 개시
▶2012년 7월 램시마 한국(MFDS) 판매허가
▶2015년 3월 셀트리온제약, 청주공장 준공식
▶2016년 4월 램시마 미국 FDA 판매허가 획득, 10월 램시마 수출액 1조 원 달성

김종국 기자 kjk@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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