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겨울 칼 바람처럼 불어닥친 국제통화기금(IMF)의 서슬은 서른 두살 나이의 대기업 최연소 임원인 그에게도 퍼랬다. ‘삼성맨’으로 탁월한 사업 기획력과 차별화 전략으로 백전백승한다는 그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놓치지 않았다. 1991년 당시 한국생산성본부 전문위원으로 일하던 그는 김 회장에게 낙점돼 일약 대우자동차 상임고문 자리에 오른다. 기세 등등한 시절이었다.

▲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
▲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
하지만 10년 후 IMF외환위기 한파로 유동성 위기에 몰린 대우그룹은 산산조각 났다. 18조 원대 부채 덩어리가 된 대우차는 2001년 미국 제너럴모터스(GM)로 넘어갔다. 졸지에 실업자가 된 그는 한 때 극단적인 선택도 시도했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그는 지금 벤처계의 ‘전설’로 우뚝 서 9조 원대 주식 부호가 됐다. 주식 자산으로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바로 다음이다. 그가 바로 서정진(60) 셀트리온그룹 회장이다. "대우그룹을 그만두고 우연히 사업을 시작했어. 몇 년 동안 아무리 해도 되질 않았지. 기획도 전략도 잘 짰고, 시장도 제대로 골랐는데… 온 힘을 다해도 안되는 거야. ‘대우 망가뜨린 서정진과 말도 섞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대우짝 난다’ 이런 얘기가 들렸지. 세상과 등지기로 결심하고 가족에게 유언을 남겼어. 목숨을 끊으려고 했지만 사고가 나서 계획이 틀어졌지."

서 회장은 1999년 12월 대우그룹의 멍에를 털어내고 인천 연수구청 7층 벤처센터에 ‘넥솔’을 창업한다. ‘백수’ 2명이 시작한 사업에 당시 뜻을 같이한 백수들이 모여 무역, 정보통신(IT), 장례사업 등 갖가지 아이템으로 도전했다. 넥솔 멤버는 향후 셀트리온 설립의 주역이 됐고, 2009년 셀트리온헬스케어로 사명을 바꿨다. "자살에 실패하면서 보름을 더 살아보기로 했는데, 그동안 인연이 닿았던 사람들이나 새로 만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너무 고맙다’고 말을 전했어. 그랬더니 지인들이 진짜 감동을 받는 거야. 아군이 생기고 주변 상황이 바뀐 거지. 그동안은 전부 내 머리, 내 능력으로 다 하려고 했거든. 그러니 남들은 ‘똑똑하니까 네가 다 해보라’는 식이었어. 하지만 15일을 덤으로 살면서 삶의 방식에 큰 깨달음을 얻었어. 그래 함께 가는 거야."

서 회장은 2001년 세계 바이오산업의 중심지인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가 생명공학과 바이오산업 현장을 구석구석 훑으며 석학들의 자문을 구한 끝에 미래 바이오시밀러 사업의 거대한 가능성을 확신한다. "내 눈으로 ‘1천조 시장’을 확인했지만 사업할 돈은 없었지. 컨설팅을 하면서 대기업에 투자를 제안했어. 삼성을, LG를, 삼양사를 찾아갔어. 다 퇴자를 놨지. 그래서 돈이 많다는 KT&G를 찾아갔어. 사장한테 목숨을 걸고 하겠다고 설득했지. 결국 200억 원을 투자했어. 이후 벤처캐피탈에서 200억 원을 더 투자받아 사업에 돛을 올렸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첫 발을 내 딛은 서 회장의 이 거대한 신화는 IMF 외환위기가 만든 실직자의 삶에서 움텄다. <관련 기사 3면>

김종국 기자 kjk@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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