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읍내’에 살아보는 게 로망이었다. 사는 게 언감생심인 바에야 읍내 구경이라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길 손꼽아 기다리던 코흘리개 시절이 있었다.

경남 하동 산골마을 출신인 기자는 운 좋게 초등학교 5학년 때 뜀박질 선수로 뽑혀 읍내라는 ‘미지의 세계’를 밟을 수 있는 ‘영광’을 얻었다.

더 넓은 운동장과 격이 달라 보이는 교사(校舍), 몸 푸는 자세부터 예사롭지 않은 읍내 출신 또래들의 기세에 주눅 들어 한 걸음 내디디는 게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결과는 불보듯 뻔했다. 꼴찌를 면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선수’들을 인솔한 선생님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면 오늘 시합은 충분히 의미 있다"며 풀이 죽어 시무룩한 촌놈들에게 짜장면을 하사하셨다. 그 또한 읍내라는 동경의 대상이 제공한 최고의 맛이었다.

이처럼 읍내라는 단어는 유년시절 기자에게 지향점이자 목표였고, 설렘과 두려움 등등 온갖 감정을 일깨우는 일종의 마중물이었다. 적어도 그땐 그랬다. ‘아부지’께서 읍내에라도 다녀오실라치면 ‘이번에는 어떤 주전부리를 사오실까’ 기대하며 수없이 집과 동네 어귀에 있던 신작로까지 오르내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음 달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과 이동면이 읍으로 바뀐다. 굳이 ‘승격’이라는 단어를 피한 건 읍면동은 동급이어서다. 승격이란 단어는 눈속임이다. 여하튼 용인시 행정구역은 현재 1읍 6면 24동 체제에서 3읍 4면 24동 체제로 전환된다. 용인시에서 면이 읍으로 바뀐 것은 2005년 10월 31일 포곡읍 이후 12년 만이다.

시는 관련 조례와 규칙 등을 개정하고 지적공부와 과세자료, 주민등록 등 각종 자료를 정비한 뒤 다음 달 11일 읍사무소 개소 행사를 열 계획이다.

시는 읍 '승격'으로 민원과 복지, 산업 등은 물론 건설 분야 조직까지 갖추게 돼 모현·이동지역 주민에게 양질의 행정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는 입장이지만 주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혜택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행정안전부 자치분권과 관계자도 별다른 이의를 달지 않는다. 법적으로 보장되는 읍면동의 혜택은 흡사하다는 것이다. 요즘도 ‘나 읍내 살어’라며 우쭐댈 사람이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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