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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존 하이튼 미 전략사령관(공군 대장)이 지난 18일(현지 시간) "위법적이라고 판단되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핵 공격 지시를 받더라도 거부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또 "이런 무거운 책임을 맡은 자리에 있으면서 어떻게 생각을 안 할 수 있겠는가"라면서 "위법한 명령을 실행하면 남은 평생을 감옥에서 썩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발언은 너무나 당연하고 타당한 내용이지만, 현직 군 최고위자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지시마저도 거부할 수 있다고 천명한 대목은 매우 돋보이며 그의 강직함이 여실히 묻어난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과거 정권에서 일했던 청와대 참모진과 국정원장 등 주요 공직자들이 직권 남용 등의 혐의로 줄줄이 수사나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들 중에는 "대통령의 위법한 지시를 따르지 말 걸 그랬다"면서 뒤늦은 후회를 나타낸 사람도 있다. 그러나 후회는 소용없는 일. 결과적으로 그들은 역사와 국민 앞에 큰 죄를 저질렀고 이제 상응한 법적 책임을 혹독하게 져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사실 우리 국민 중에는 ‘하급자는 상급자의 지시에 반드시 복종해야 한다’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러나 이는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다. 하급자는 상급자의 ‘적법한 지시에 대해서만’ 복종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명령하복체제가 분명한 군인과 경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대법원 판례도 이를 분명히 하고 있다. 대법원은 "상관의 적법한 직무상 명령에 따른 행위는 정당행위로서 형법 제20조에 의하여 그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할 것이나, 상관의 위법한 명령에 따라 범죄행위를 한 경우에는 상관의 명령에 따랐다고 하여 부하가 한 범죄행위의 위법성이 조각될 수는 없다"고 판시한 바 있고(대법원 1997. 4. 17. 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 "공무원이 그 직무를 수행함에 즈음하여 상관은 하관에 대하여 범죄행위 등 위법한 행위를 하도록 명령할 직권이 없는 것이며, 또한 하관은 소속 상관의 적법한 명령에 복종할 의무는 있으나 그 명령이 명백히 위법 내지 불법한 명령인 때에는 이는 벌써 직무상의 지시명령이라 할 수 없으므로 이에 따라야 할 의무가 없다"고 판시하기도 했다(대법원 1999. 4. 23. 선고 99도636 판결).

 우리나라의 대통령제를 흔히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비판하는데, 대통령제가 그렇게 타락한 원인은 일차적으로 대통령의 권위적 직무태도에 있지만, 공직자들의 무분별한 맹종에도 상당한 원인이 있다. 대통령을 봉건시대의 왕처럼 추앙하며 그 지시를 절대적으로 따르는 풍토를 타개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제2, 제3의 대통령 탄핵 사태가 또 발생할 수 있다. 공직자들이 위법한 지시를 거부하는 강직함을 지녀야 한다. 스스로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 돼서는 안 된다.

 맹목적 복종의 행태는 민간부문에도 만연돼 있다. 기업에서 상사의 지시를 거부했다가 인사상의 불이익 등 여러 형태의 ‘조직의 쓴맛’을 보게 된 사례가 많다. 어쩌면 무조건적 상명하복의 관행은 군부독재 정권이 남긴 군사문화의 적폐일 수 있으며, 이를 해소해야만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다. 위법한 지시를 거부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위법한 지시를 거부해야만 결과적으로 자신과 조직을 보호하게 된다는 점을 모든 직장에서 널리 교육해야 한다. 위법한 지시를 거부하는 자들은 자신에게 닥칠 불이익을 무릅쓰고 미래에 발생할 사회적 불행과 재앙을 예방하기 위해 과감히 ‘아니오’를 말함으로써 우리 사회를 부패하지 않게 ‘소금’의 역할을 하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을 보호·우대하는 제도적 장치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또한 조직 내부의 비리를 폭로하는 양심선언자와 공익제보자에 대한 보호·우대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지난 27일 정부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을 향한 신군부의 발포명령을 거부하고 고문까지 당했던 고(故) 안병하 경무관을 치안감으로 1계급 특진 추서했다고 밝혔다. 늦었지만 매우 잘한 일이다. 강직한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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