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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이는 헤르만 헤세의 성장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유명한 글귀다. 세상에 던져진 우리는 단순히 육체만 성장한다고 어른이 되지 않는다. 온전한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투쟁을 통해 알 밖의 세상으로 나와야만 한다. 자신과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세계의 균열을 경험하지만, 내면의 혼돈을 통해 성숙한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2017년을 한 달여 남긴 지금, 우리는 세계의 어디쯤 서 있을까! 오늘은 침묵을 통해 자신의 참모습을 찾아가는 수도자들의 삶을 그린 ‘사랑의 침묵’을 소개하려 한다. 수녀님들이 등장하는 다큐멘터리이긴 하지만 특정 종교색으로 채워진 작품은 아니다. ‘나’를 만나는 길, 그 성찰의 가치를 묻는 영화 ‘사랑의 침묵’을 만나보자.

 런던의 노팅힐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관광과 쇼핑의 명소이다. 이런 곳에 어울리지 않는 가르멜 봉쇄수도원이 자리잡고 있다. 갖가지 소음으로 가득한 세상을 뒤로하고 기도로 봉헌하는 삶을 살아가는 10여 명의 수녀들은 스스로 선택한 침묵 속에서 평생을 살아간다. 하루 두 번 주어지는 짧은 휴식 시간을 제외하면 일체의 삶은 정적으로 가득하다. 그렇다고 이들의 삶이 적막한 것은 아니다. 자급자족으로 의식주를 해결하는 만큼 일상을 위한 노동 역시 기도하는 삶만큼이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세상과 단절된 채 평생을 수도원 안에서 그리고 침묵 속에서 기도하는 인생은 고행의 길처럼 보인다. 혹은 속 편하게 살아가는 현실 도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시선에 수녀들은 스스로 찾고 두드린 길이기에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지도 않으며, 참된 자신과 마주하는 일은 도피나 회피가 아니라고 말한다. 사랑의 메시지를 기억하는 것이 아닌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스스로 답을 찾아 실천하는 모습은 처연한 희생보다는 오히려 넘치는 활력으로 가득하다.

 "난 진정,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데미안’의 첫 문장처럼 우리는 자신에게 이르는 길이 무엇보다 어려운 일임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채 태어난다. 하지만 한 단계 더 나아가려는 부단한 노력을 통해 온전한 자신을 구축해 간다. 그리고 그 첫 걸음이 바로 ‘나’를 만나고 ‘나’를 알아가는 일 일 것이다.

 수도자의 삶은 생산적 효과와 효용의 측면에서 보자면 무의미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면의 혼돈과 마주한 숱한 번민 끝에 이들은 존재의 이유와 오롯한 자신을 발견했다. 우리도 때로는 바쁜 일상과 스마트 한 감옥에서 벗어나 침묵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그 속에는 나에게만 허락된 유토피아가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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