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배로 낳은 자식을 버리거나 남에게 줄 수 없어서 우리네 어머니는 ‘이혼만은 안된다’며 그 모진 세월을 버텨내셨다. 그 어머니들은 3대를 넘어 부(富)가 유지되지는 않는 소위 ‘한때는 잘 나갔다’는 졸부 가문의 남편을 만나 부침을 거듭하는 국내외 경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어이 도시 빈민의 아내로 전락했다. ‘한강의 기적’을 만들며 종처럼 일했던 부군(夫君)들은 그렇게 몇 푼 번 월급봉투를 우리네 어머니들에게 던지고 정열을 불태웠고, 스스로를 위무하며 얼마남지 않은 자존감을 겨우 지켜냈다. 우리네 아버지가 권력과 부와 이름을 남기지 못한 채 늙어가는 사이 어머니들은 끝내 가정을 버리지 않고 우리 사회의 근간이 되는 가장 중요한 조직을 방어하고 사수해 냈다.

 그런 어머니들에게 국가는 표창도 훈장도 문화상품권 한 장도 공짜로 나눠주지 않았다. 오히려 억척스럽고 무식한 ‘아줌마’ 칭호를 부여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네 어머니들의 삶을 돌이켜 보면 논리도 없고 비열하면서도 야만적인 그 한(恨) 많은 세월을 ‘피붙이’ 하나 때문에 ‘참고 견뎌야 한다’고 사회 안팎에서 부추긴 것은 잘한 일이었을까. 어머니 그 자신에게도, 부조리한 가정에서 자란 그 자식에게도, 아직까지도 자신은 옳다고 믿고 있는 그 아비에게도, 더 나아가 국가에게도 말이다.

 이는 베이비부머 세대에게서 요 몇 년 새 황혼 이혼과 졸혼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이유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오래 함께 하며 자식을 뒷바라지하고 가정을 지켜낸 것은 부부의 위대한 업적이지만 ‘끝내 서로 같을 수는 없기에’ 이제라도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을 찾자는 것이다.

 굴곡진 삶을 살아온 베이비부머 세대나 ‘N포 세대’인 요즘 젊은이들은 극단적 선택인 이혼은 피하면서도 자녀의 법적 지위를 지킬 수 있는 ‘라트(LAT ; Live Apart Together)’를 주목하고 있다. 이는 떨어져 있지만 이혼하지 않고 함께 사는 새로운 가족의 형태이다. 부부는 각자의 거처를 멀지 않은 곳에 마련해 정해진 시간이나 도움이 필요할 때 왕래하고 가족 관계를 합리적으로 유지한다. 프랑스의 팍스(PACS)도 유사하다.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은 존중받고 부부와 자녀는 법적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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