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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어릴 때부터 시험을 많이 보고 그 결과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들이 세상에 또 있을까?

 그건 조선시대도 그랬다. 다수의 양반들 거의가 평생 시험에 매달렸다. 엘리트의 충원이 여기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시험에서 요구된 건 한문에 대한 숙련과 뛰어난 문장력이었다. 그 시대 중국은 상대적으로 오늘날의 미국 이상의 선진국이었으니 중국의 선진 문물을 흡수하기 위해서도 그랬고, 중국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도 그랬다. 다만 100여 년이 지나자 어느 정도 변화가 있었다. 과거시험에 합격한 사람과 떨어진 사람을 구분하면 ‘우수한 인재’의 경계선이 흐려진 것이다. 이런 변화에서 우수한 인재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싹텄다.

 과거시험이 갖는 탁월함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이 사회발전이나 인문적 환경을 조성하는 토대였고 국가 운영의 질적 향상도 가져왔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시험용의 표준화된 지식과 문제풀이식 학습, 창의성보다는 암기력이 중시되는 형태가 굳어졌는데 우리나 중국이나 이 점에서는 별로 다를 바 없었고 그 영향은 지금도 적지 않다.

 오늘날 우수한 엘리트에게 필요한 건 정답을 골라내는 능력이 아니라 무엇이 문제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기성 지식 중 무엇이 필요한지 판단하는 능력, 그런 지식을 재구성하고 발전시켜 문제 해결 방법을 도출해내는 능력 같은 것이 절실하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가능하려면 가장 중요한 전제를 충족해야 한다. 기성의 지식과 믿음을 붙들고 있는 권위와 권력에 대해 의문을 품고 비판적으로 보면서 실제 행위가 수사에 앞서 진심이 있어야 한다는 그것이다.

 #1. 지난달 베이징의 남부 신젠촌의 낡은 아파트에서 화재가 일어나 19명이 숨졌다. 희생자는 대부분 ‘농민공’으로 불리는 가난한 이주노동자들이었다. 그런데 화재 다음날 베이징의 각지에서 10만 명 이상에게 당장 안전위험 시설을 철거하니 지역을 떠나라는 통지가 내려졌다. 그리고 철거반원들이 동원돼 추위 속에서 강제 단전·단수를 하거나 한밤중에 습격해 집을 부수고 폭력을 행사했다. 졸지에 삶의 터전을 잃고 거리를 쫓겨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절망적인 모습이 온라인에 잇따라 올라왔다.

 역사학자 장리판을 비롯한 100여 이상의 지식인들이 반체제 불순분자라는 낙인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자비한 강제 철거를 당장 중지하라’는 공개서한을 발표했고, 칭화대의 쑨리핑 교수는 "비극적인 화재가 안전을 명분으로 가난한 농민공을 쫓아내는 핑계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며 농민공의 불우한 상황을 중국의 급격한 도시화와 불균형의 발전, 몇몇 도시로 자원이 집중된 때문이라고 지적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차이치 베이징 당서기는 "시간적 여유를 주고 진행돼야 한다"면서도 퇴거 조치는 계속돼야 한다고 해서 비판을 받았다. 시간적 여유라는 건 수사일 뿐 중요한 방점은 퇴거 조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2. 한국의 유력한 정치인은 5년 전 정치판에 들어서기 직전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의 기억을 얘기하며 "그렇게 힘없는 사람들은 사회가 돌봐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을 보고 참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이 사회에서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많이 고민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척박한 보육 환경을 예를 들어 "서민들은 물론 중산층까지 이런 형편인데 낙후된 복지를 조금 확충하자는 정도의 얘기를 갖고도 포퓰리즘 운운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화가 치민다"고도 했다. 이 안철수에게 젊은 세대와 진보층이 열광적으로 지지를 보냈고 일약 대권 후보 인기 1위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이 정치인은 지금 꼭 대통령이 되겠다는 강한 권력 욕구에 사로잡혀 ‘힘없는 사람들을 보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성공으로 점철된 인생에 실패의 오점을 남길 수 없다는 오기 정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 두 얘기는 그들의 수사와 나타나는 본모습이 정반대라는 시험 선수 엘리트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살펴볼 가치가 있다. 그들은 정답을 골라내는 데 능하다. "시간적 여유를 주어야 한다"와 "힘없는 사람들을 보듬어 줘야 한다"는 점에서 엘리트다운 수사를 하고 있으나 실제 행동은 ‘권력 지향’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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