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옵티콘.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창안한 둥근 형태의 감옥이다. 중앙에는 높은 감시탑이 있고, 그 둘레를 빙 돌아가며 감옥이 배치된 구조다. 감옥 안의 감시자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모든 수감자를 감시할 수 있는 형태다. 수감자들은 감시자가 항상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아예 감시자의 시선을 내면화해 규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스스로 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언론학자들은 흔히 언론을 개에 비유한다. 워치독(Watchdog), 랩독(Lapdog), 가드독(Guard dog), 슬리핑독 (Sleeping dog). 워치독은 ‘감시견’을 뜻하는데,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을 감시하며 자본주의 체제의 가치를 지키는 역할을 수행하는 언론이다. 부정과 불의에 맞서며 진실을 알리는, 제 역할을 하는 언론이다.

 반면 랩독은 말 그대로 권력의 ‘애완견’ 같은 언론을 뜻한다. 주인의 무릎에 올라않아 애교를 부리며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달콤한 간식을 받아먹는 그 안락함에 취해 버린 언론. 거기에 동화되고 기생하느라 절대 비판적일 수 없다.

 또 가드독은 ‘경비견’을 뜻하는데, 기득권 구조에 편입돼 언론을 권력화하고, 그래서 그 권력을 지키려고 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그래서 때로는 자신의 이익과 반하게 될 때 스스로 지키려 했던 대상을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다. 슬리핑독은 말 그대로 ‘잠자는 개’다. 매우 중요한 이슈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귀와 입을 막고 눈을 감은 채 잠을 자는 언론을 뜻한다. 시대의 고발자이며 감시자라는 본연의 역할을 스스로 포기해버린 언론이다.

 올해로 기자생활 16년차.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그동안 언론인으로서 제 역할을 했는지 되짚어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랩독, 가드독, 슬리핑독의 복합체였다. 지역사회란 미명 아래 적당히 넘어가주고, 때로는 스스로 눈을 가리고 펜을 놓아버렸다. 또 때로는 권력과 자본에 아부하며 그들이 던져주는 달콤한 간식을 받아먹기도 했다. 또 때로는 권력 같은 권력 아닌 권력 같은 그것에 취해 오만했고, 타성해 젖어 발전도 이루지 못했다. 부끄럽다. 스스로 펜옵티콘이 되고자 했던 그때의 패기와 열정. 무엇이 그것들을 잃게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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