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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부에서 큰 거북이를 바치다

김윤식 전 인천시문화재단 이사장/시인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7년 12월 07일 목요일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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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식 전 인천시문화재단 이사장

1874년, 그러니까 고종 11년 6월 20일자 실록에는 ‘인천부에서 큰 거북이를 바치다’라는 기록이 있다. 인천부(仁川府)에서 아주 큰 바다 거북이 한 마리를 잡아 고종 임금께 바친 모양인데, 그 내용이 고종과 도제조(都提調) 이유원(李裕元)의 대화 속에 나온다.

 고종과 이유원의 대화는 이유원이 고종께 원자궁(元子宮)의 기후(氣候)를 묻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에 대해 고종은 원자가 5월부터 수두(水痘)를 앓았는데 지금은 다 나았다는 대답을 한다.

 이에 이유원이 날짜를 택일하여 각전(各殿)과 각궁(各宮)에 원자의 쾌차를 알리는 절차를 거행하자고 아뢴다. 이는 왕실의 중대사이며 경사이니 고종도 그러자고 윤허한다.

 거북이 이야기는 바로 그 다음에 이어진다. 이유원이 문득 "지난번에 공퇴(公退)할 때 들으니 인천부에서 상서로운 거북을 바쳤다고 합니다. 신이 보지는 못하였지만 과연 드물게 있는 상서(祥瑞)입니다"라고 하자, 고종이 "어제 고시홍(高時鴻)의 상소를 보니 이 일을 가지고 과거(科擧)를 설치해 경사를 다채롭게 하자는 요청이 있었으나 우연한 일을 가지고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라고 말한다.

 흥미로운 것은 거북이 크기에 대한 고종의 설명이다. 조금은 과장스럽게 들리는데, 고종은 "거북의 몸뚱이가 대단히 커서 길이가 1장(丈) 남짓하고 너비도 그만하였다. 목을 쭉 뽑으면 2장쯤 되는데 어림짐작으로도 1칸 방에 두 마리의 거북을 넣을 수 없을 정도이다. 거북이 크다는 말은 옛날에 들었지만 오늘에야 큰 것을 알았다"고 말한다.

 1장(丈)은 열 자(尺)로 3m가 넘는다. 그러니 거북이의 길이가 3m에 너비도 3m 정도라는 이야기이다. 더구나 ‘목을 쭉 뽑으면’ 2장쯤 된다고 하니 무려 6m의 길이이다.

 그야말로 ‘1칸 방에 두 마리의 거북을 넣을 수 없을 정도’로 매우 크고 드문 초대형 거북이인 셈이다. 어쩌면 큰 것이 2.5m에 이른다는 장수거북류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고종의 설명에 대해 이유원은 "옛날 서응도(瑞應圖)에서는 ‘덕화(德華)가 백성들에게 잘 젖어 들어 있으면 고기 잡거나 사냥할 때 나타난다’고 하였고, 또한 ‘왕도(王道)가 한편으로만 쏠리지 않고 무리 짓지 않으며 나이 많은 사람을 존중해 등용하면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지금의 이 상서는 우리 전하의 정사와 교화가 만물에 미친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라고 덕담을 한다.

 그러자 고종은 짐짓 "효종조(孝宗朝)에 심양의 관소(館所)에서 머물러 있을 때 직접 큰 거북을 보았다고 한다"고 대꾸한다.

 서응(瑞應)은 ‘임금의 어진 정치에 하늘이 감응(感應)해서 나타난 징조’를 뜻하는데, 일상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물건들, 즉 기묘한 산수(山水)나 화조(花鳥), 특이한 동식물과 어해(魚蟹) 따위를 상서로운 상징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서응도는 용, 기린, 봉황, 같은 상서로운 것들을 그린 것으로 이유원의 서응도 운운은 바로 이 거북이가 그 같은 ‘하늘의 감응’이라는 의미이다.

 또 한 가지 ‘효종조(孝宗朝)에 심양(瀋陽)의 관소(館所)’에 관한 고종의 언급은 효종대왕 묘 지문(誌文)에 관한 것인데, 실록에는 대군(大君) 시절 효종이 8년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을 때, "갑자기 오색 빛이 방안에 꽉 차더니 신령스러운 거북이 나타났다"는 고사가 적혀 있다. 거북이에 관한 고종과 이유원의 대화는 여기서 끝난다.

 거북이가 등장한 1874년이라면 한말의 풍운이 더욱 짙어가던 때이다. 인천 강화에서 이미 병인, 신미 두 양요(洋擾)를 치르고, 이어 또다시 강화에서 운양호사건이 터지는, 그 바로 전해인 까닭이다.

 묘한 것은 이런 절체절명의 시기에 서응의 하나인 큰 거북이가 외침(外侵)의 현장 인천부에 나타나 조정에 바쳐졌다는 사실이다.

 이유원의 말대로 왕도가 한편으로만 쏠리지 않고 무리 짓지 않았기에 하늘의 감응으로 큰 거북이가 인천에 출현했던 것이라면, 그래서 이 나라 국운이 달라질 것이었다면….

 그러나 역사는 거북이의 출현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었다. 그래서 안팎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이유원의 말 속에 오히려 다른 진의(眞意)가 숨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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