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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겸 경기시인협회 이사
얼마 전 오랜 지인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의료기 부품을 제조 납품하는 공장을 운영해 왔는데 종사자도 20여 명이 넘는 작지만 제법 단단한 경영 형태를 유지했었다. 그런데 최근 노사 간 임금 협상 결렬로 오랜 시간 갈등을 빚은 결과 부득이 30여 년간 운영했던 "공장을 죽여야만 했다"고 자책 어린 하소연을 했다.

 죽은 공장의 의미는 무엇일까? 몇 십 년간 잘 돌아가던 공장이 문을 닫았다면 그것은 분명 노동자의 일할 권리를 박탈하고 가족을 해체시키며 사회를 파괴하는 악성 바이러스라 할 수 있다. 죽은 공장은 광의적 의미에서 볼 때 국가에 대하여는 법정 전염병보다 더 무서운 사회의 악이다. 그리고 협의적 의미에서는 나와 가족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죽음으로 내모는 악성 종양이기도 하다. 우리는 1997년 IMF 경제위기 시절, 그리고 2000년대 금융 위기 이후, 너무도 귀에 익은 ‘폐업정리 대바겐세일’, ‘공장정리 땡처리 세일’ 등 서글픈 구호를 많이 접하며 살아왔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공장 폐업으로 인한 많은 아픈 기억들이 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전국적으로 불붙듯 일어날 때, 농촌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려고 새마을공장을 설립해 우리 어머니와 누이들의 노동력을 흡수한 적이 있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공장 시스템은 최신식 전자 시스템에 밀려 노동력을 집약적으로 요구했던 새마을 공장은 자연스럽게 문을 닫고 이 과정에서 실업자가 된 동네 누이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일감을 달라고 농성도 하고 눈물을 흘리며 사업주들에게 호소하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오늘날에 와서는 기업 환경과 경제적 여건으로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의 공장 폐업으로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하루아침에 빼앗기고 한 가정의 생명까지 유린된 사실이 있다.

 1990년부터 1993년까지 3년간 부산지역 신발 공장의 폐업으로 무려 10만여 명의 노동자가 대량 해고됐으며 원청업체의 폐업으로 하청업체가 연쇄적으로 도산하면서 도미노 실업 사태를 맞이한 것이다.

 그 같은 일은 지속적으로 반복해 일어나고 최근에는 공장 자동화 시스템으로 구조조정이 시작되면서 대규모 실업사태가 우려되고 있다. 이것은 결국 소득의 감소, 경기침체, 이로 인한 세금부담 증가 등으로 이어지는 등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어 가고 있는 중산층이 붕괴되면서 경제의 한 사이클이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결국 제품에 대한 주문이 끊어지고 공장을 돌리는 기계음도 멈춰선 벨트 위엔 정지된 시간과 적막감만 감돌고 있는 죽음의 도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공장이 멈추어 선 행위적 요소에 의미를 둔 것이 아니라 공장의 죽음은 곧 인간의 죽음과 연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의 생계가 막연한 추운 겨울, 햇살은 점차 짧아지고 따뜻한 기운마저 사라져가고 있다. 작은 마당에서 허기에 지친 아이들이 추위에 떨며 배고픔을 달래는 모습은 어쩌면 폐업된 공장 주변 마을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현실인 것이다.

 직장이라는 한 울타리 안에서 함께 웃고 함께 울던 동료들, 동료가 아니라 동지라고 부르는 그들 앞에서 평생 업보처럼 짊어지고 가고 싶은 터전이 몰아치는 감원 태풍에 날아가 버렸다. 노사분규로 공장이 죽어간다면 실업사태로 이어지고 이것은 굶주림으로 인한 가정의 존엄성까지 붕괴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구 유럽에서는 임금 협상을 어떻게 풀어 가고 있을까? 그것은 간단하다. 노사 모두가 너무도 투명하게 그리고 신뢰의 바탕 위에서 협상이 이루어진다. 불경기로 인한 공장의 매출액이 감소할 경우 노조는 스스로가 사측에 임금 인하를 제시해 경비를 줄인 다음 죽어가는 공장부터 살려 놓고 향후 매출액이 증가할 경우 다시 되돌려 받는 그야말로 평화적 협상으로 본인들의 일터와 일자리를 지킨다. 이렇게 되면 작게는 어려웠던 기업이 살아나는 것이고 크게는 국가의 신용도와 경쟁력 상승으로 이어져 단단한 복지국가가 성립되는 것이다. 노사협력은 곧 가정과 국가의 평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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