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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사연 인천문인협회 이사

2017년을 마감하는 12월이다. 지난밤을 하얗게 새웠다. 어제 발생한 교통사고로 인한 후유증 때문이다. 그렇다고 육체적 상처나 통증이 심해서가 아니다. 친절을 베풀며 살아온 삶이 현명했던가에 대해 반추하다 보니 동녘이 희붐하게 물들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약국은 폐업한 상태지만 약사라는 신분을 천직으로 가슴 한 구석에 새겨왔기에 각종 모임에서 지인들에게 건강 상담을 해 준다. 지인 중엔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약국까지 갈 수가 없으니 대신 약품을 구입해 달라고 부탁을 하는 분도 있다. 지인 한 분에게 얼마 전 약 심부름을 해 줬는데 그 당시에 깜박했다며 다른 약품을 또 당부했다. 건강이 안 좋으면 만사가 귀찮아지는가 보다. 요즘 독감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황이어선지 약을 구입하러 약국에 가는 일이 선뜻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약사라는 천직과 사명감을 앞세워 차를 몰았다. 약국에서 일을 보고 골목에서 차를 돌려 나오려 후진을 하는 찰라 뒤 범퍼에 충격이 느껴졌다. 후진 카메라 화면을 보니 좀 전까지 안 보였던 오토바이가 장승처럼 서 있다. 차문을 열고 뒤로 가 죄송하다는 말을 하니 중국집 배달원인 오토바이 운전자는 죄송하다고 말하면 다냐고 눈을 부라린다. 그는 오토바이를 골목 한 구석으로 옮긴 후 내 차 뒤 범퍼를 휴대전화로 촬영했다. 나도 렌즈를 들이댔지만 범퍼엔 오토바이 바퀴 흙자국만 그려져 있을 뿐이고 오토바이 역시 흠진 데가 없었다. 완충성이 강한 고무타이어와 연질 플라스틱 범퍼가 접촉했는데 양측 차량이 파손될 이유가 없었다. 상대방 휴대전화에 연락처를 입력시켜주자 오토바이 운전자는 속히 음식 배달을 가야 한다며 골목길에 매연을 한 움큼 내뱉은 후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치료비와 합의금으로 75만 원을 주고 대인 처리를 끝냈다는 보험사 직원의 연락이 왔다. 항의를 하자 발목이 아프다는데 어쩌겠냐며 입원 안 한 것만도 다행이란다. 순간 눈앞이 깜깜해지며 현기증이 인다. 세인들의 말마따나 영양가 없는 일이나 하고 다니는 내 자신이 한심스러웠고 야박한 세상 인심이 원망스러웠다. 예전의 내 경험으로는 그 정도의 접촉사고면 별 것 아니니 그냥 가시라고 했는데 요즘은 시대가 바뀌었나 보다.

 지난 달 21일,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형사조정 전문화교육 내용 중엔 친절을 베풀다가 화를 당한 경우를 소개했다. 교회 목사가 신도들을 스타렉스에 태우고 운행하던 중 보행자를 충격해 상해를 입히는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이때 급제동하는 과정에서 승객 한 사람이 중상을 입었고 치료를 받다가 결국 2개월 만에 사망해 친절을 베푼 목사와 유족이 얼굴을 붉히는 일이 벌어졌다. 나 역시 모임이 끝난 심야에 일행을 집에 태워다 주다가 건널목을 무단 횡단하는 행인을 칠 뻔했던 경험이 있다. 화물트럭에 승용차가 추돌당하고 가족일지 친지일지 모를 탑승객이 전원 사망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땐 등골이 오싹해진다.

 그래서 어느 지인은 절대로 제삼자를 차에 태우지 않는다는데 칼날 같은 그의 신념에 세상 여론은 인정머리가 없다고 쉽게 손가락질을 한다. 승용차로 1t 화물차 뒷부분을 추돌한 적이 있었다. 트럭 운전자는 자신의 차는 넘버 판 주위만 손보면 된다며 오히려 내 차 걱정을 해 줬다. 그러나 며칠 후 정비업자는 트럭 적재함까지 탈착했고 운전자는 3일간 입원 후 합의금을 챙겼다는 소식을 보험사에서 전해주었다. 그가 72시간 입원실을 지키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어제 뉴스에는 사고 차량의 파손과 관계없는 부분까지 도색을 하거나 멀쩡한 부분에 흠집을 낸 후 추가 수리를 한 자동차 수리업소를 단속하고 차주까지 입건하겠다는 보도가 나왔다. 제발 바란다. 기나긴 겨울밤을 자조어린 한탄과 한숨으로 지새우며 두 번 다시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지 않겠다고 수없이 다짐했건만 타고난 천성을 무시하고 하루아침에 오지랖을 꿰맬 자신이 없다. 세상인심이 야박해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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