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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5년간(2012~16년) 전국적으로 살인, 강도, 강간 등의 범죄로 공소시효가 만료된 건수가 1만6천124건에 달한다. 살인 12건, 강도 26건, 강간 14건, 절도 243건, 폭력 382건이고, 그 밖에 마약사범 74건과 사기·횡령 1만1천398건 등의 범죄자들도 공소시효 만료로 자유롭게 전국을 누비고 있는 것이다. 한편, 지난 9월 3일 창원지법 거창지원에서는 범인도피 등의 혐의로 기소된 함양농협 전·현직 임직원 8명 전원에 대해 무죄 또는 면소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 농협의 직원 이모(47)씨가 2002년~2007년 동안 농작물을 매입한 것처럼 전산을 조작해 26억2천여만 원을 빼돌렸는데, 횡령죄의 공소시효 기간이 7년으로 지난 2014년 끝나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다른 임직원들에게도 공소시효 만료 등의 이유로 모두 무죄 또는 면소판결을 내렸다고 한다. 막대한 금액의 횡령범죄가 발생했는데도 범인은 물론이고 이를 은폐한 다른 임직원들조차 모두 처벌을 면하게 되다니, 참 기가 찰 노릇이다. 이런 뉴스를 보고 "사기·횡령·배임 등의 범죄를 저지르고 길지 않은 공소시효 기간만 넘기면 한몫 크게 잡을 수 있겠구나"하고 나쁜 마음을 먹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날까 두렵다.

 공소시효라 함은 범죄행위가 종료한 후 일정한 기간이 지날 때까지 그 범죄에 대해 기소를 하지 않는 경우에 국가의 소추권 및 형벌권을 소멸시키는 제도를 말하는데, 이를 둔 취지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증거의 수집·판단이 곤란하게 된다는 점과 범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약화되는 점을 고려하고 범죄자의 생활안정을 보장하자는 것 등이다. 그런데, 과학수사 기법이 크게 발전해 오랜 동안 미제로 남아 있던 범죄가 해결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시간의 경과에 따라 증거의 수집·판단이 곤란하게 된다는 점은 설득력이 크게 약화됐다. 또한 범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약화되는 것 그리고 피고인의 생활 안정을 보장하자는 것도 역시 설득력이 별로 없다. 대부분의 범죄 피해자는 평생 동안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하는데 범죄자는 일정기간만 지나면 처벌의 염려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는 것은 정의·형평의 관념에 비춰 볼 때에도 문제가 있다. 다행히 국회는 지난 2015년 형사소송법을 개정해 사람을 살해한 범죄(범죄를 도운 종범은 제외)에 대해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도록 했고,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에서도 공소시효 적용 배제 규정을 두고 있다.

 반인권적 국가범죄(고문 등)와 기타 중범죄에 대해서도 공소시효의 적용을 배제할 필요가 있다. 한편 공소시효 기간을 늘릴 필요도 있다. 현행법상 공소시효 기간은 범죄의 경중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①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는 25년 ②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해당하는 범죄는 15년 ③ 장기 10년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에 해당하는 범죄는 10년 ④ 장기 10년 미만의 징역 또는 금고에 해당하는 범죄는 7년 ⑤ 장기 5년 미만의 징역 또는 금고, 장기 10년 이상의 자격정지 또는 벌금에 해당하는 범죄는 5년 ⑥ 장기 5년 이상의 자격정지에 해당하는 범죄는 3년 ⑦ 장기 5년 미만의 자격정지, 구류·과료 또는 몰수에 해당하는 범죄는 1년이다. 이를 대폭 늘려야 한다. 국회는 지난 2010년에 형법을 개정해 유기징역·유기금고의 기간을 ‘1개월 이상 15년 이하’에서 ‘1개월 이상 30년 이하’로, 형을 가중하는 때에는 ‘25년’에서 ‘50년’으로 대폭 늘렸는데, 이를 고려하더라도 공소시효 기간을 현행보다 2배 정도 늘이는 것이 합당할 것으로 생각된다(독일·일본 등의 공소시효 기간도 우리보다 2배 정도 길다). 또한 공소시효의 기산점을 ‘범죄행위가 종료한 때’가 아니라 ‘검사가 범죄행위를 인지한 때’로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사기·횡령·배임 등의 범죄는 절도·강도 등과 달리 범죄 피해가 범행 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확인되는 경우가 많다). 한편, 검찰·경찰은 공소 시효 만료 전담팀을 만들어 범죄자를 적극 색출해야 한다. 범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인식을 널리 확산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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