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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언동(思貌言動).’ 십여 년 전부터 업무수첩 맨 앞장에 붙여 놓았던 다산 선생의 말씀입니다. ‘생각은 깊이, 용모는 단정히, 말을 짧게, 행동은 신중히’ 하라는 의미입니다. 연초가 되면 다시 오려서 수첩 앞장에 붙이면서 다짐하는 것으로 한 해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대략 50세쯤 넘어서부터 ‘생각은 얕게, 용모는 대충, 말은 많이, 행동은 가볍게’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가을 무렵, 뜨락에 서서」(지식과 감성·정해동 지음)에 수록된 ‘미리 쓰는 퇴임의 글’ 중에서 

용인시 정해동 서기관이 10여 년간 일기형식으로 적은 단편 산문 52편과 시 4편, ‘미리 쓰는 퇴임의 글’ 1편을 모아 「가을 무렵, 뜨락에 서서」라는 제목의 산문집을 지난달 발간했다.

 정 서기관은 초임 발령지인 면사무소 근무시절 있었던 어느 할아버지와의 에피소드를 ‘할아버지와 천원’이라는 글에 녹여냈고, 3개 구청 개청을 앞두고 1천여 명이 넘는 대규모 인사를 단행해야 했던 인사계장으로서의 고뇌와 다짐은 ‘가을로 가는 남한강변’이라는 단편에 담았다.

 형제처럼 믿고 의지했던 동료 직원을 떠나보내야 했던 슬픔은 ‘故 윤동신 형께 부침’ 이라는 추도사에 고스란히 배어있다.

 또 20대 후반이라는 늦은 나이에 입대해 겪었던 병영생활의 추억은 ‘두 병사 10개월의 이야기’ 속에서 꿈틀대며 현실처럼 다가온다. 양주 모 전방부대 신병훈련소에서 만났던 일명 ‘고문관’으로 불리는 막내동생뻘의 훈련소 동기와의 애절한 스토리는 그의 인품을 가늠케 한다.

 80년대 군사정권의 강제징집을 피해 자원입대했던 친형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제대 후 복학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요양시설에서 30여년 간 생활하다 결국 지난해 삶의 끈을 놓았다는 비사는 읽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이밖에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두 아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담은 생활 속 단편들은 어느 새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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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서기관은 1960년 처인구 백암면 출생으로 단국대학교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용인시 정책기획과장, 평생교육원장, 의회사무국장 등을 거친 뒤 지난 2월13일부터 12월7일까지 지방행정연수원 고급리더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복직을 기다리고 있다.

 정 서기관은 "공직생활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의미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 책을 내기로 마음먹었다"며 "그동안 고마웠던 분들과 자식들에게 ‘이렇게 느끼며 살았다’고 책을 선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용인=우승오 기자 bison88@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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