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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선택의 기준은 다양하다. 배우와 감독에 대한 신뢰 혹은 취향에 맞는 장르일 경우, 해당 영화를 관람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때론 앞선 경우와 달리 작품의 화제성이 선택 기준이 되기도 한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8 마일’은 개인적으로 꽤 먼 길을 돌아 만나게 된 작품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핫 한 래퍼 에미넴 주연의 자전적 이야기를 픽션화 한 작품 ‘8 마일’은 2003년 개봉 당시 많은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힙합 음악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던 한 사람으로 스타 비히클(스타 한 명의 재능과 매력, 상품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의 영화)로 느껴지는 이 작품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14년 만에 작품을 찾아 본 배경에는 힙합 음악에 대한 호기심이 크게 작용했다.

 영화 ‘8 마일’의 스토리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래빗’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지미는 자동차 산업의 불황을 직격으로 맞은 디트로이트의 빈민촌에서 나고 자랐다. 성인이 되어서도 온전히 독립하지 못한 그는 엄마의 컨테이너 집에 얹혀살고 있다. 고단하고 비참한 일상을 견딜 수 있게 해 주는 유일한 동력은 음악으로, 힙합 뮤지션이 되고 싶은 단 하나의 열망이 그를 달리게 했다. 지미에게 힙합과 랩은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숨 쉴 수 있는 투쟁의 언어였다. 비록 동네 한편의 허름한 무대였지만 지미는 주어진 45초 동안 자신만의 이야기를 배틀 속에 토해낸다.

 1970년대 뉴욕의 빈민가 흑인 음악으로 시작된 힙합은 어느새 국내에서도 의미 있는 주류음악으로 자리잡았다. 힙합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 중 단연 상징성과 대표성을 띠는 것은 랩일 것이다. 반복되는 비트 속에 가사를 전달하는 랩은 무대에서 일대 일로 실력을 겨루는 방식인 ‘배틀(battle)’이라는 독특한 방법으로 진행되는데, 상대가 던진 랩을 이어받아 반격하는 서바이벌 형식이다. 영화 ‘8마일’에서 지미는 랩 배틀을 통해 상처와 좌절을 스스로 드러내며 희망을 얘기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전하기 때문에 일부 가사가 다소 거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가공하지 않은 날것의 진솔함이 주는 감동이 힙합과 랩의 매력이다.

 개인적으로 힙합의 매력을 처음 알게 된 계기는 지난해 발표한 어거스트 디(Agust D.)믹스 테이프 수록곡 ‘So far away’에서 시작됐다. 귀를 사로잡은 가사는 ‘Dream(꿈), 시작은 미약했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 Dream, 결국 시련의 끝에 만개하리’라는 부분으로 꿈조차 없는 공허한 청춘에 공감과 위로를 건네고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힙합에 대한 관심이 합합 문화와 래퍼의 열정을 담아낸 영화 ‘8 마일’로 이끌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요즘, 숱한 변명 속에 일부러 놓아버린 꿈은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영화 속 ‘래빗’과 실제 ‘에미넴’, ‘어거스트 디’ 그리고 우리의 삶에도 시련은 있겠지만 꿈을 안고 걸어가고 있다면 그 끝에 희망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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