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그리드(SmartGrid)’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로 떠올랐다. 지구 온난화로 전력 수급의 어려움과 녹색성장을 위한 에너지 효율성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스마트 그리드는 똑똑하다는 뜻인 ‘Smart’와 전기, 가스 등의 공급용 배급망이란 뜻의 ‘Grid’를 합성한 단어다.

전 세계 국가에서 신·재생에너지 기술을 개발하며 에너지 효율 상승을 위해 등장한 기술이자 에너지 정책이기도 하다. 차세대·지능형 전력망으로도 불린다. 미국은 2003년 ‘그리드 2030(Grid 2030)’이라는 국가 비전을 발표해 전력망의 현대화, 스마트 계량기 보급 등의 사업을 추진했다. 한국도 2010년 스마트 그리드 산업 국가 로드맵을 수립해 2020년까지 도시단위 지능형 전력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기존 전력망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적용해 저렴한 시간에 전기를 저장해뒀다가 필요한 시간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에너지 효율을 최적화 하기 위한 밑그림이다.

 기자는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의 최중인 스마트그리드연구센터장을 만나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에너지 패러다임 변화와 스마트 그리드에 대해 들어 봤다. 스마트그리드연구센터는 절전이나 에너지 효율 향상을 통해 얻어지는 잉여 에너지를 되팔아 수익을 올리는 ‘네가와트(Negawatt)’ 시장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등 ICT 융합형 에너지 기술분야 발전에 힘쓰고 있다.

 최 센터장은 "전기와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전력망을 지능화한다면 고품질의 전력 서비스를 보다 효율적이고 투명하게 제공해 에너지 이용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며 "4차 산업 환경에서 에너지 분야의 화두는 가상발전소(VPP)다. 이를 활성화 하기 위해서는 스마트 그리드 인프라와 신·재생에너지 콘텐츠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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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최 스마트그리드연구센터장과의 일문일답.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에너지 패러다임이 어떻게 변하나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여러 가지 정의가 있는데, 에너지 분야에는 그 핵심이 되는 개념을 되짚고 넘어 가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은 물리적 재화를 데이터화해 소프트웨어 공간에서 최적의 알고리즘으로 처리하고, 그 결과물을 다시 물리적 재화에 적용하는 것이다. 1·2차 산업혁명은 오프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3차 산업혁명은 온라인에서 온라인이지만,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비즈니스 패러다임은 온라인에서 오프라인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 공간에서 비즈니스가 이뤄져 한계비용 제로의 공유경제 모델을 구현할 수 있게 된다. 기존의 전기는 물리적 재화로서 현실에서 거래가 발생하기에 많은 거래 비용이 필요해 비즈니스 상에서 한계가 분명했다. 이 같은 한계가 사라지면 에너지 생산과 보급에 있어 효율성과 안정성이 높아진다.

- 스마트 그리드의 적용 사례는

▶스마트 그리드는 전기의 생산과 소비를 데이터화해 소프트웨어 공간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그 결과물을 돈으로 정산해준다는 점에서 4차 산업혁명의 비즈니스 패러다임에 적합하다. 하지만 스마트 그리드 사업은 지난 10년 간 국·내외적으로 성과가 지지부진하고 크게 수익을 창출한 기업이 적다. 기존의 보수적인 전력회사들의 관성과 소극적 태도가 첫 번째 이유다.

여기에 근본적으로 정보통신기술을 적용하는 단계가 사실상 3차 산업혁명의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새 패러다임을 주도할 킬러 어플리케이션(핵심 아이템·Killer Application)이 부족한 탓도 있다. 스마트 그리드의 킬러 어플리케이션은 가상발전소(VPP·Virtual Power Plant)다. 앞으로는 스마트 그리드라는 개념보다는 가상발전소(VPP)가 에너지 분야에 있어 더 적합한 핵심 비즈니스 개념이 될 것이다. 가상발전소(VPP)는 다수의 작은 발전소들을 모아서 가상으로 발전소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 전력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말한다. 여러 군데 분산된 발전소들을 가상공간에 묶어 하나의 발전소처럼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이것이 실제 발전소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법적인 권리가 주어져야 하는데, 아직 해당 법안이 통과되지 않은 상태다. 이 개념은 기존의 발전소는 물론 신·재생발전소, 더 나아가 아낀 전기나 보유한 전기를 전력시장에 판매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수요자원 거래시장(네가와트 시장) 등을 아우른다. 발전자원의 특징상 소규모 분산자원이 가상발전소에 적합하다는 점에서 신·재생에너지(태양·지열·해양·바이오 에너지)가 가상발전소(VPP)의 활성화 및 확대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현재 2014년 전기사업법 개정을 통해 수요자원 거래시장만이 가상발전소(VPP)로서 법적 지위를 갖게 됐다. 불과 3년 만인 현재 가상발전소(VPP) 자원 규모는 4.2 GW로 원전 4기 용량을 넘어서고 있다.

- 스마트 그리드는 어떤 방식으로 활용되나

▶4차 산업 환경에서 에너지 분야의 화두는 가상발전소(VPP) 사업의 활성화로서 이를 위한 인프라 확산과 콘텐츠 개발이 매우 중요하다. 이 인프라가 바로 스마트 그리드고, 콘텐츠가 신·재생에너지다. 가상발전소(VPP) 사업은 플랫폼 사업으로서 ‘우버(Uber)’의 사례와 유사하다.

 운송 비지니스로 유명한 우버는 비즈니스의 3대 요소인 노동, 자본, 토지가 없이 오직 가상의 플랫폼만을 가지고 5천만 명이 이용하는 세계 최대의 가상택시사업자가 됐다. 한국의 경우 ‘배달의 민족’ 등 요즘 유행하는 애플리케이션을 예로 들 수 있다. 모두 각 사업 요소와 수요자들을 연결만 시켜주며 인프라를 조성해 확대하는 방식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즉, 공유의 경제다. 가상발전소(VPP) 사업도 유사한 모델이다. 발전소가 하나도 없이 남의 발전소, 혹은 빌딩이나 공장의 수요자원, 저장장치 등을 가지고 발전사업을 하는 것이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스마트 그리드다. 스마트 그리드에 있어서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 중 하나인 사물인터넷(IoT)의 활용이 필수다. 어떤 발전소가 전기를 얼만큼 생산하고 그 전기를 누가 언제 얼마나 썼나하는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마트 그리드는 신·재생에너지를 고려한 분산 발전 형태로서 다양한 데이터로 사용하는 전기량을 예측하는 식으로 효율을 높여 에너지 낭비를 막을 수 있다. 양방향으로 전력과 정보가 흘러 소비자 참여로 설비가 운영된다. 특히 전력 수급 상황별 차등요금제를 적용해 사용자에게 전기 사용량과 요금 정보를 알려줌으로써 자발적인 에너지 절약을 유도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스마트그리드가 성공한 도시는 세계적으로도 거의 없다. 대부분의 도시가 스마트시티(정보통신기술이 적용된 똑똑한 도시·Smart City)를 구성할 때 초점을 경제성과 편의성 개념에만 맞추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용되는 에너지 역시 친환경 에너지에만 한정해 설계하기 때문에 기술 융합이 매우 어렵다. 스마트 그리드 기반의 스마트시티가 출현하기 위해서는 지속가능성을 중심으로 다양한 융합이 시도돼야 할 것이다.

- 가상발전소(VPP)의 장점은 무엇인가

▶가상발전소(VPP)는 에너지의 생산과 소비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발전 사업을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들어가는 비용은 거의 없다. 이 정보를 통해 소규모 분산자원을 활성화할 수 있는 롱테일(80%의 비핵심 다수가 20%의 핵심 소수보다 더 뛰어난 가치를 창출하는 개념·Long Tail) 에너지 마켓을 만들어낼 수 있다.

 따라서 스마트 그리드 및 신·재생 에너지 보급 확대를 촉진할 수 있게 된다. 기존 전력망은 최대 수요량에 맞춰 예비율을 두고 일반적으로 예상 수요보다 15% 정도 많이 생산한다. 중앙집중형 발전 형태로서 공급자 중심으로 설비를 운영한다.

하지만 가상발전소(VPP)는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 발전소별 전기생산량을 파악해 그 발전소에서 공급이 가장 용이한 가정으로 공급하는 등 수요자 중심의 운영을 할 수 있다. 쓴 만큼만 내기 때문에 보다 정확하고 투명한 전력거래가 가능해 진다.

- 향후 에너지 분야에 있어 산업환경 변화는

▶현재 4차 산업의 핵심기술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적용된 자율주행차를 대표적인 예로 설명하고 싶다. 자율주행차는 모두 전기 기반으로서 기존의 석유 중심 산업환경에서 지속가능한 에너지와 기술환경으로 전환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전기차의 충전기 설치는 전기수요 패턴의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자율주행차가 확대에 앞서 충전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잘 고려해야 한다.

자율주행차가 사용하게 될 전기는 무시할 수 없는 규모가 될 것이고, 충전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을 경우 막대한 전력 피크로 인한 정전 등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자율주행차의 상용화는 전력계통의 운영 및 도시·빌딩 설계에도 크게 영향을 줄게 될 것이다. 특히 다양한 전력거래를 통한 비즈니스의 창출을 위해 ESS(남는 전력을 따로 저장했다가 필요한 시기에 공급하는 시스템·Energy Storage System) 사용이 어마어마하게 증대될 것이다.

- 경기도와 기업의 주요 대응전략은 무엇인가

▶경기도는 에너지 자립율이 가장 낮은 도시다. 경기도 에너지 비전 2030에 따르면 에너지 자립율을 현재 20%에서 80%까지 올리려면 기존의 발전소 건설, 신·재생 에너지 확대 및 에너지 절감으로는 불가능하다. 경기도는 에너지 소비가 가장 많은 지자체이며 지역적으로 산업 생산성이 매우 높은 지역이다. 그리고 서울에 비해 에너지 생산시설도 월등히 많다. 제주도나 타 지역에 비해 에너지소비도 매우 크다. 경기도는 가상발전소(VPP) 사업에 최적화된 여건을 가지고 있다. 특히 고양시 사물인터넷 융·복합 시범단지 조성사업 등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스마트시티 건설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향후 가상발전소(VPP) 적용을 통한 스마트시티 융합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첨단 소프트웨어 기업과 인력을 활용해 부가가치가 높은 가상발전소(VPP) 중심의 스마트 그리드 사업을 수행한다면 4차 산업혁명에 걸 맞는 세계 최고의 첨단 스마트에너지 시티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안유신 기자 ays@kihoilbo.co.kr

신기호 기자 skh@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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