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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석 인천대 교수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는 12월 6일 마지막 주제인 정부 형태에 대한 집중토론회를 가졌다. 토론회에서 여야는 개헌시기와 정부 형태에 대해 다른 의견을 표출했다. 여당은 내년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를 목표로 개헌을 하자는 입장이고 야당은 내년 지방선거 때로 시점을 못 박아 하는 ‘개헌을 위한 개헌’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또한 여당은 현행 대통령제를 4년 중임 대통령제 정도로 손질하는 권력구조 개편을 주장하고, 야당은 분권형 대통령제를 주장하거나 선호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개헌 시기와 정부 형태에 대해 여야 사이에 의견을 달리 하기 때문에 내년에 개헌을 할 전망은 현재 시점에서 밝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그동안 개헌의 필요성이 계속 제기돼 왔고 특히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제거하기 위해서 대통령 권력의 분산이 꼭 필요하다고 인식돼 왔기 때문에, 개헌은 꼭 추진돼야 하고 권력구조 개편 또한 미뤄서는 아니 될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 폐단은 사람의 문제이지 제도의 문제가 아니란 이유로 대통령 권력 분산에 반대하는 주장도 있으나, 그 반대 이유 자체가 모순이다. 또한 이 반대론은 ‘현행 헌법 아래 역대 대통령 모두가 성공적으로 퇴임하지 못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한두 명이 아니고 ‘현행 헌법 아래 역대 대통령 모두가 성공적으로 퇴임하지 못했다’는 사실처럼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제도란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도 없다. 이 때문에 대통령의 권력 분산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기에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 과반수가 분권형 대통령제 정부 형태를 선호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 더 나아가 오죽하면 국회의장이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시킬 필요성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거듭해서 언급하고 있겠는가.

 일부에선 4년 중임 대통령제 정부 형태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제도는 5년 단임 대통령제의 문제점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제거하는 해법이 될 수 없다. 그 까닭은 다음과 같다.

 첫째, 대통령제는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3권 분립을 기본구조로 하여 그 3자 사이에 견제와 균형을 핵심원리로 삼는 정부 형태이지만, 대통령이 행정부 수반 겸 국가 수반의 지위를 가지고 있어 대통령은 상징적으로 입법부와 사법부 보다 우위에 있다. 상징적 우위를 넘어 실질적으로 한국 대통령은 대법원장에 대한 인사권을 갖고 있어 사법부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고, 소속 정당인 여당을 통해 국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 권력 분립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둘째, 현대국가가 행정국가화됨으로써 행정부 영역이 비대해지고 수많은 공공기관이 설치돼 있는데, 이곳에 대통령의 막강한 인사권이 행사되고 있으나 한국 특유의 정치문화 때문에 법치(法治)가 아닌 인치(人治)와 정실(情實)주의가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정권교체기마다 임기가 보장된 공직자들이 새 정부와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체되는 것은 그 단적인 사례이다.

 셋째, 대통령제는 기본적으로 대통령만이 유일한 집행기관이고 국무총리나 장관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직책이므로, 정부 안에서 대통령 권력의 위임이 이뤄진다 해도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총리나 장관이 대통령의 권력을 분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헌법에 별도로 대통령 권력을 분산시켜 놓지 않는다면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은 결코 축소되지 않는다.

 김대중 정부 시대 대통령 김대중 - 국무총리 김종필의 연합정부를 권력분산 사례로 지적할 수 있으나, 그것은 DJP연합이란 선거전략의 논공행상으로 이뤄진 일시적인 사례일 뿐 충분한 반론의 근거가 되기 어렵다. 만일 그것이 대통령 권력의 성공적인 분산 사례로 평가된다면, 대통령 권력의 분산을 대통령이 선출될 때마다 매번 대통령의 자의에 맡기는 것보다 제도로 확립해 두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만 정치적 안정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개헌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근절하고 다원화된 민주 사회에 부합하는 권력구조를 가진 정부 형태를 안출하는 개헌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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