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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옥엽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얼마 남지 않은 2017년을 뒤돌아보면서 떠오르는 상념(想念) 하나는 선인(先人)들이 종종 언급해 왔던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다. ‘옛 것을 익히고 새 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는 「논어」 위정(爲政)편에 나오는 말이다. 널리 알려진 표현이라 평범하고 어쩌면 진부할 것도 같지만 ‘옛 것을 살펴서 새로운 것을 안다’는 그 의미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대와 상황을 떠나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같은 의미로 이를 좀 더 적극적으로 확장시킨 표현이 법고창신(法古創新)이다. 옛 것을 살펴서 새로운 것을 아는 것에 머물지 않고 만들어낸다는 것이니 보다 진취적인 의미가 있다.

 문학 창작의 중요한 방법론으로서 ‘법고창신’을 설파한 연암 박지원에서부터 역사의 의미를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로 풀어낸 서양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에 이르기까지 ‘온고이지신’을 통감하고 있다. 여기에 「삼국사기」를 편찬했던 김부식도 ‘진삼국사기표(進三國史記表)’에, 「고려사」를 편찬한 정인지 역시 ‘진고려사전(進高麗史箋)’을 통해 ‘법고창신’의 의미를 담아 역사서를 편찬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즉, 진삼국사기표에 "진한역대(秦漢歷代)의 사기(史記)에 대하여는 널리 통하여 자세히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우리나라의 사실에 이르러선 그 시말을 알지 못하니 매우 유감된 일이다." 따라서 "임금의 선·악이라든지 신하에 관한 것을 다 드러내어 후세에 모범을 보이게 하고 싶다"고 한 왕의 의도에 맞게 ‘온고이지신’에 부합한 「삼국사기」를 편찬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진고려사전에도 "듣건대 새 도끼 자루를 다듬을 때에는 헌 도끼 자루를 표준으로 삼으며 뒤 수레는 앞 수레의 넘어지는 것을 보고 자기의 교훈으로 삼는다고 합니다. 대개 지난 시기의 흥망은 장래의 교훈이 되기 때문에 이 역사서를 편찬하여 올리는 바입니다"라고 하여 역시 ‘법고창신’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얼마 전, 신문과 방송을 통해 무려 228년이나 된 일본의 ‘소바집’이 소개된 적이 있었다. 일본에는 오랜 시간 명성을 이어온 소바집이 많은데, 1789년 도쿄에 문을 연 흰 메밀소바 가게(사라시나 호리이[更科堀井])도 그 중 하나였다.

 1870년대부터 왕실에 소바를 보냈고, 이는 1989년 아키히토 일왕 즉위 때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왕실에 납품한 소바 명가인데도 본업을 망각한 7대손 때문에 소바가게는 1920년대 문을 닫았다. 이후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지역 주민들이 후원금을 거둬 공동체 형태로 운영하다가 사라시나가(家)에서 다시 문을 열고 지금은 9대손에 의해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 역시 옛 것을 살펴서 새롭게 변화·발전해가는 ‘법고창신’의 의미를 잘 반영한 사례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럼에도, 평범한 이 말을 실천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요즘은 특히, 옛 것은 낡고 시대에 맞지 않아 버리거나 청산해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 더구나 옛 것을 자세히 살펴보지도 않고, 철저한 분석과 비판을 통한 반성도 없이 혁신적이라는 것에 매몰돼 새로운 것만 만들어 내기 급급한 것은 아닌지? 소박하고 낡았어도 과정마다 묻어있는 시행착오의 흔적이, 그로 인해 오늘날의 발전이 연유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단순히 오래되고 낡았다고 지나쳐버릴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축적된 오랜 경험과 과정마다 스며있는 도전에 대한 응전의 방법론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시각에서,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인천이 지향하는 ‘인천 가치 재창조’와 그 ‘가치’에 대해 궁금해 하고 때로는 의아해 하곤 했다. 다양한 가치의 정립을 위해 옛 것은 옛 것대로, 새로운 것은 또 다른 옛 것으로 남을 미래의 역사를 위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인천 가치 재창조’의 핵심적 개념은 ‘법고창신’이다. ‘법고창신’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할 때 인천의 가치도 재창조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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