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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준상 서정대학교 창업전담교수

제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올 새로운 사회는 그동안 인간의 경제적·제도적 성취에 대한 근본적 검토를 요구한다.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영국에서는 증기기관 발명으로 제1차 산업혁명이 진행됐다. 와트의 증기기관을 중심으로 면직업과 철강업이 산업혁명을 주도하게 됐으며 이 시기에 발명된 많은 기계는 산업생산을 지탱하는 중심 역할을 하게 됐다.

 계속되는 기술혁신은 사회, 경제 등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데, 먼저 기계화는 초기 투자에 많은 자본이 필요하게 됐다. 그리고 기계의 가동은 대량생산의 길을 열면서 잉여생산물이 급속도로 증가하게 됐다. 이러한 잉여생산물을 서로 교환하기 위한 시장(Market)이 자연스럽게 발전했고, 여기에서 출발한 시장경제(Market Economy)는 봉건체제를 제치고 서구 산업사회의 새로운 생산 시스템으로 자리잡게 된다.

 생산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생산요소가 필요하다. 자본, 노동력, 기술, 토지 등이 대표적인 생산요소인데,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자본이 가장 강한 생산요소로 기능하고 나머지 생산요소는 여기에 종속됐다. 이렇듯 자본이 생산시스템의 중심 역할을 맡게 됨에 따라 돈을 모으기에 적절한 생산조직이 등장했는데, 주식회사는 자본의 힘을 극대화시키기에 가장 적합한 조직 형태이다. 이러한 연결 관계는 결국 시장경제 = 자본주의라는 등식을 성립시키게 됐다.

 그러나 이러한 생산시스템 이면에는 하루 16시간 근무라는 열악한 근무조건, 비인간적인 작업환경과 유아노동(7세 이상 어린아이의 고용) 등 처참한 작업현장에서 인권이 보장되지 못하는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양산됐다. 이에 대한 저항으로 이들은 자본이 아닌 노동력을 중심으로 하는 또 다른 생산조직을 탄생시키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은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주체, 즉 노동력의 형태에 따라 생산자들끼리 모이는 생산자협동조합, 노동자들이 함께 자기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노동자협동조합(직원협동조합), 그리고 소비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한 소비자협동조합으로 구별된다. 국내에서 서울우유는 대표적인 생산자협동조합이고 아이쿱, 한살림은 대표적인 소비자협동조합이다.

 제4차 산업혁명으로 비롯되는 사회는 소비자의 개성과 차별성이 다시 존중받는 시대로 변할 것이다. 대량생산의 시대에서 똑같은 기성품으로 만족해야 했던 소비자는 각자의 다양성을 주장하기 시작했고, 기술의 발전은 각자의 개성을 살리는 대량생산을 가능케 한다. 새로운 사회는 방법론(know-how)보다는 정체성(know-why)에 대한 탐구가, 산업사회의 인재양성보다는 전인교육이 더욱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생산이든 소비든 인간이 드러나고 인간이 존중받는 경제활동은 자본을 종속적으로 만들고 노동의 가치를 최대한 살리게 될 것이다. 이것은 결국 주식회사의 퇴장과 협동조합의 도래를 이끈다.

 먼 옛날, 네안데르탈인이 높은 지능에도 불구하고 사피엔스에게 지구의 주인 자리를 내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개인기가 팀워크에 밀렸기 때문이다. 경제시스템에 이를 대입시켜 보면 주식회사가 네안데르탈인이라면 협동조합은 사피엔스의 위치에 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인 1933년 협동조합이 강제 해산된 이후, 1960~70년대의 정부 주도로 개별법에 의해 농협, 수협이 설립된 것을 시작으로 70~80년대의 신용협동조합의 부침, 그리고 90년대 이후의 생활협동조합(소비자협동조합)으로 발전까지 지난한 협동조합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다 UN이 정한 세계협동조합의 해인 2012년 드디어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면서 본래적 의미의 협동조합 운동이 나타나고 있다.

 시장경제는 계속 세계를 이끌 것이다. 그러나 1920년대 대공황기나 2008년 금융위기에서 확인했듯이 그동안 중심역할을 담당했던 자본주의(특히 주식회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 한계성을 드러내고 있다. 오히려 주변부를 맴돌던 협동조합에 새로운 기회가 찾아오고 있다. 집단에서 나오는 협동의 힘이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협동 능력은 하루아침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를 위해 교육시스템을 포함한 전체 생태계가 변해야 한다. 경쟁과 속도를 강요했던 그동안의 교육에서 협업과 방향을 중시하는 새로운 교육이념이 교육 현장에 접목돼야 한다. 정부 정책과 사회구조, 심지어 가치관마저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 청산해야 할 적폐는 생활에만 있지 않다. 우리 머릿속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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