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4대 원칙에 합의했다. ‘전쟁 절대 불가, 비핵화 원칙의 확고한 견지, 대화·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 남북관계 개선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상호간 인식 공유’가 그것이다.

 안타깝게도 ‘북한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인 제재와 압박’은 빠지고, 행위자의 실체성과 책임성이 모호한 정치·외교적 수사만 가득하다. ‘북핵을 어떻게 없앨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인 해법이 안 보인다. 같은 날 홍준표 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시진핑 주석을 알현하러 가는 날 (중략)… 북중러 사회주의 핵 동맹에 대항하기 위해 일본에 왔다"면서 아베 총리와 면담을 가졌다.

 면담 내용 대부분은 한중 정상회담과 대척점에 있었다. ‘대화를 위한 대화는 필요 없고, 중국·러시아의 강력한 제재가 가장 중요하며, 일본 상공에서라도 한미일 군사훈련이 필요하다’는 내용 등이 그런 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외국 정상 앞에서 자국 대통령을 그렇게 폄훼하는 것은 영 아닌 듯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큰 책임은 대통령과 측근에 있다고 본다. 지도자 그룹이 국가의 안위보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더 고수하고, 그 연장선에서 문제를 풀어가면 군(軍)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한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북한에 대한 해상봉쇄 검토’라는 국방장관의 발언을 청와대 측근이 "장관 개인의 의견일 뿐"이라며 선을 그어 버렸다. 최근에는 한미연합훈련 연기론이 대두되는데 "절대 그럴 일 없다"고 말해야 할 국방부 대변인이 "결정된 바 없다"고 애매하게 말한다.

 이처럼 군 지휘권 영역에 청와대의 보이지 않는 실체들이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동맹국과 군사훈련을 조율하고, 주적에 대응하는 방위전략에 개입하는 건 잘못된 일이다. 책임도 지지 못할 자들이 식견과 전문성도 갖추지 못한 채 ‘안보 분야를 정치의 연장선’처럼 대하면 나라는 결딴난다. 영화 남한산성의 배경인 병자호란이 주는 진정한 교훈은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못 본 것이라기보다 막판까지 눈치나 보며 전투에 임하지 않았던 군 지휘관들에게서 찾는 게 맞다. 그리고 그처럼 국방·안보를 정치의 노리개로 만든 자들은 바로 임금과 문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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