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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식 전 인천시문화재단 이사장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3월의 시식(時食)으로 기록돼 있지만, 과거 인천의 미식가이시자 ‘우리 맛’ 탐구에 저명하신 고 신태범(愼兌範) 박사의 저서 「먹는 재미 사는 재미」 에는 12월 어류로 분류돼 있다. 인천 근해에서는 이 무렵부터 복어가 많이 났기 때문에 그리하신 것으로 생각된다. 신 박사께서는 이 책에서 "호식(好食)의 요결(要訣)은 그 고장의 토산(土産)이 한창 흔하게 나도는 제철에 먹어야 한다"는 말씀과 함께 복어 요리에 대한 아주 구수하고도 맛깔스러운 내용의 글을 남기셨다.

 "요즘 대중식사로 잔 복으로 끓인 매운탕이 성행하고 있다. 구수한 복찌개 한 그릇이면 몸이 활짝 풀린다고 한다. 큰 복은 고급어에 속하고 회와 복국(지리)은 일본 요리의 상석을 차지하고 있다. 사람이 다칠 정도의 독이 있어 가정에서 다룰 수는 없으나 건작은 양념장으로 찌면 좋은 반찬이 된다."

 복찌개 한 그릇! 이 한마디 말만으로도 입안에 군침이 돌면서 추위에 오그라들었던 몸뚱이가 금세 ‘활짝 풀리는’ 것 같다. 복의 제철은 겨울철이고 뭐니 뭐니 해도 한국인에게는 역시 매콤한 찌개가 으뜸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처럼 고급요리로서 맛있는 복어가 종종 인간의 목숨을 앗는 독극물이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요즘에는 복을 조리하거나 그 부산물 처리에 대한 관리가 엄격해 식중독 사망사고가 전혀 없지만, 1950∼60년대까지만 해도 ‘일가족 전원 사망’ 같은 끔찍한 기사가 2월, 3월이면 신문지상에 하루가 멀다 하고 빈번하게 실렸다. 대개 가난하고 무지한 사람들이 부잣집 쓰레기통에 버려진 것이나, 또는 아무렇게 처리하고 버린 복어 알을 주워다 먹고 사망하는 사고였다. 신 박사께서는 ‘사람이 다칠 정도의 독’이라고 다소 완화된 표현을 쓰셨지만, 심지어 묵호(墨湖)에서는 잘못 다룬 복어를 끓여 먹고 13명의 뱃사람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다.

 이렇게 자칫 사람을 치사(致死)케 하는 복어의 내장이 한센씨병 완치의 기적을 일으켰다는 옛 신문 기사가 있어 흥미 거리로 소개해 본다. 1932년 12월 15일자 중앙일보가 그런 내용을 싣고 있다. 기사는 우선 "인천부회(仁川府會) 부의장 김윤복(金允福) 씨로부터 일전 총독부 위생과장 서귀(西龜) 씨에게 문둥병에 복어의 내장이 절대적 효과가 잇다는 보고가 왔다"라는 서두로 시작된다. 당시 총독부도 전선(全鮮)의 한센씨병 예방을 위해 나서던 때여서, "김 씨의 보고가 세간에 적지 않은 충동"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하 김윤복의 보고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김윤복의 모친이 경남 동래군에 살 때, 이 어촌에 한센씨병이 심했다. 그래서 외딴 해안에 집 한 채를 짓고 환자들을 따로 수용하였는데, 하루는 수용되었던 열일곱 살짜리 처녀가 돌연히 사망한다. 불쌍히 여긴 동네 사람들이 시체라도 거두어 주려고 가보니 시체 근처에 구더기가 우글우글했다. 그래서 접근하지 못한 채 그대로 두었는데 사흘 만에 기적처럼 처녀가 살아난다. 사람들이 놀라 자초지종을 묻자 처녀는 이왕 버려진 인생, 완치될 가망도 없는데 구구하게 살 것 없이 죽어버리자는 생각으로 "죽든 전날 바닷가에 나가서 복의 내장을 한껏 먹엇든 바 그때부터 줄곳 잠이 들엇다가 문득 눈을 떠본 즉 이가티 완인(完人)이 되었다"는 말을 한다.

 어머니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고는 김윤복도 그 후 이 병을 앓고 있는 어떤 친구의 자식에게 복 내장을 권유한 결과 의외로 전쾌(全快)되었고, 그래서 본인이 인천서장으로 재직할 때 아는 사람을 시켜 중국에 가서 시험했는데 역시 백발백중 효험이 있었기에 총독부에 보고했다는 것이 전체 기사의 내용이다. 물론 김윤복의 이야기에 대해 신문도 반신반의하는 투로 "이것이 의학적으로 증명만 된다면 일대 복음이 될 것"이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현대의학으로 한센씨병은 얼마든지 완치되는 일반 병이나 다름없으니 오늘날 이런 말을 귀에 담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무튼 겨울철 호식으로 일품인 복 요리 이야기를 하다가 이 기사가 생각나 황당한 대로 소개하게 됐다. 참고로 김윤복은 인천 출신으로 일본어에 능통해 러일전쟁 중 인천항경찰서장에 임명됐고, 인천부회 부의장, 중추원 참의, 그리고 광복 후에 다시 인천경찰서장 등을 지낸 바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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