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을 에는 추운 날씨에도 노인들은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폐지 줍는 일을 멈추지 못한다. 사진은 한 노인이 매서운 추위에도 폐지를 담은 수레를 끌고 힘겹게 이동하고 있다. 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 살을 에는 추운 날씨에도 노인들은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폐지 줍는 일을 멈추지 못한다. 사진은 한 노인이 매서운 추위에도 폐지를 담은 수레를 끌고 힘겹게 이동하고 있다. 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이경심(82·가명) 할머니는 살을 에는 매서운 날씨에도 폐지 줍는 일을 멈추지 못한다.

생계가 어려워 서가 아니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수족(手足)’이 온전할 때 움직여 스스로 생활비를 벌겠다는 생각 뿐이다.

예전 같으면 눈을 뜨면 자리에서 일어나 수레를 끌고 집을 나선 시간이 오전 4~5시였다. 하지만 영하 10℃를 오르내리는 요즘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해가 뜬 후인 오전 8시 이후에야 집을 나선다. 영하 7℃를 기록한 20일 오전 8시께. 할머니는 여느 날처럼 수레를 끌고 집을 나섰다. 늦어진 만큼 벌이는 시원치 않다. 수레를 끌고 주안동의 한 골목을 돌아다니던 할머니는 주택 근처 전봇대에 놓인 종이상자를 발견하고 얼굴이 환해졌다. 고물상에서 값을 제일 많이 쳐 주는 종이상자가 6개나 놓여있었다.

할머니는 추운 날씨에 언 손을 불어가면서도 "이사하는 집이 있었던 건지 오늘은 수확이 좋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곧 할머니는 종이상자를 수레에 옮겨 담고 장소를 이동했다. 할머니는 평소에는 집 근처 과일가게나 단골 슈퍼마켓에서 버리는 종이상자를 모았다. 폐지 줍는 노인들 사이에서는 할머니는 유명하다. ‘베테랑’ 소리를 듣는다. 할머니의 폐지 줍기는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다. 할머니는 "늙어서 자식들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며 "손자들 키우기도 힘든데 나까지 손 벌리기 싫다"고 고개를 저었다.

어느 정도 수레가 채워지자, 평소 다니던 승기사거리 인근 고물상으로 향했다. 이곳에서는 1㎏ 기준으로 종이상자 120원, 신문 130원, 고철 150원에 매입하고 있다. 무게가 덜 나가고 부피가 커서 일명 ‘물렁이’라고 불리는 플라스틱은 70원 밖에 되지 않는다. 베테랑인 할머니는 하루 종일 폐지를 모아 3~4번씩 고물상을 드나들고 나서야 3만 원 정도를 손에 쥔다.

100살이 다 된 나이에도 폐지 줍기를 그만두지 못하는 노인도 있다. 경로당에 다니면서 주운 폐지를 아들이 운영하는 고물상에 가져다 주는 소인옥(94·가명) 할머니가 그렇다.

할머니는 전라도 순천에서 평생을 지내다 10여 년 전 인천으로 이사를 왔다. 아들이 순천에서 운전 일을 하다 사업이 어려워져 함께 인천으로 온 것이다. 현재 할머니 아들은 숭의동 인근에서 고물상을 운영하고 있지만 경기 침체 등으로 사정은 녹록지 않다.

가족들은 최근 부쩍 추워진 날씨와 건강 문제로 할머니에게 "폐지 주우러 다니지 말라"고 말린다. 그래도 아들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다. 할머니는 "자식이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은 누구나 다 같을 것"이라며 "조금이지만 이렇게 모은 폐지가 아들의 고물상 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이들처럼 인천에서 거리를 누비며 폐지를 줍는 노인들의 수는 1천여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김태형 인턴기자 kth@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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